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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편. ‘빈집 공포’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빈집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EBS 다큐멘터리 ‘시선’

#1. 지난 7월 12일 방송된 EBS1 다큐멘터리 ‘시선’은 농촌과 도시지역에 빠르게 늘어가고 있는 빈집 문제를 다뤘습니다. 방송에서는 부산광역시 영도구의 모습이 소개됐는데요. 과거 ‘조선 산업의 메카’였던 영도구는 산업의 쇠퇴와 젊은이들의 이탈, 인구 고령화로 30년 사이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무너질듯한 오래된 주택가에는 쓰레기만 가득하고 200여 세대가 살았던 아파트엔 혼자 사는 고령자 몇 분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2. 일본 최남단 가고시마현 가노야시에 있는 ‘야나기다니’는 주로 노인들로 구성된 300명 미만의 주민이 사는 쇠퇴해가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촌장 도요시게 씨는 “젊은 예술가를 마을에 유치해 흉물스러운 빈집을 되살리자”라는 묘안을 제시하고, 공모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모셔오면서 마을은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무기력하고 어두웠던 마을은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매년 지역 축제를 열고 다양한 예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활력있는 도시가 됐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인구가 줄어들면 빈집이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특히 젊은 층의 인구 유출이 심한 지방은 더욱 그렇습니다. 빈집이 늘어나면 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붕괴의 위험이 커집니다. 게다가 범죄 위험에 노출되기도 쉽죠.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일대에 범죄의 확산과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흉물스럽게 방치된 빈집은 지역 슬럼화를 부릅니다. 그래서 ‘빈집 공포’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죠.

그러면 빈집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는 없을까요?

국가 차원에서 빈집 문제 해결에 나선 일본

일본은 빈집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빈집을 고령자 간병 주택이나 관련 시설로 활용하면 주택 한 채당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지원책을 도입했습니다. 각 지자체도 세제 지원 등 빈집 관련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야나기다니 마을’의 사례처럼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이 지역 공동체와 더불어 마음껏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예술가들이 어린 자녀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빈집을 제공함으로써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도록 했습니다. 마을의 빈집을 아주 좋은 조건으로 젊은 벤처 기업가들의 사무실이나 숙소로 활용하도록 해서 비즈니스 활성화에 성공한 사례도 많습니다.

▲ ‘순천 문화의 거리’는 젊은 예술가에게 빈집을 제공해 도시 재생에 성공한 대표 사례입니다. ⓒ자료: EBS

우리나라도 빈집 활용 성공사례가 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예가 도시재생 사업으로 거듭난 ‘순천 문화의 거리’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 없이 빈집만 가득했던 이곳에 예술가, 청년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몰라볼 만큼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조선 시대 말에 지어진 집의 형태 뿐 아니라 당시 패턴이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젊은 예술가들이 최대한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환경을 제공했죠. 결과적으로 지역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역사와 문화, 추억을 살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빈집은 도시를 피폐하고 황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지역 재생 프로젝트의 좋은 대상이기도 합니다. 재능있는 젊은 창작자, 예술가,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들이 지역 주민들과 협업 플랫폼을 구축해 빈집을 새롭게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 콘텐츠나 디자인, 관광 산업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성공 사례들이 있었죠. 철공소만 가득했던 골목이 예술가들의 거리로 변신한 ‘문래동 창작촌’이나 구두 공장 밀집 지역이 볼거리 가득한 곳으로 바뀐 ‘성수동 수제화 거리’, 낙후된 동네에 생기를 가져다준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등이 대표적입니다. 인구쇼크의 결과물인 빈집이 이제는 ‘핫플레이스’ 등극에 성공한 사례처럼 비즈니스와 문화 기획 프로젝트의 ‘기회의 땅’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도시 공동화와 빈집 증가각 앞으로 가속화될 전망

▲ 2050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주택의 10%인 302만 가구가 빈집이 된다고 합니다

빈집을 활용해 도시와 공동체를 새로 살리고 활기를 되찾게 하려는 노력이 이처럼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구감소와 젊은 층의 도시 이동 등으로 도시의 공동화와 빈집 증가는 필연적이며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의 ‘대한민국 2050 미래 항해’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주택의 10%인 302만 가구가 빈집이 된다고 합니다. 깜짝 놀랄만한 숫자는 서울과 수도권에서만 빈집이 100만 가구가 넘을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경기도는 55만 가구, 서울 31만 가구, 인천 14만 가구가 빈집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도시 빈집이 늘어나게 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주택 공급 과잉이나 ‘새집 선호’ 현상, 지역 불균형을 초래하는 재개발, 선심성 도시재생 정책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요. 일부 전문가들은 “가장 큰 문제는 빈집의 구체적인 데이터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부재”라고 지적하면서 “빈집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정확한 현황 파악”이라고 말합니다.

다행히 최근 국회에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의 개정 법률안이 발의돼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또 서울시는 ‘빈집 활용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하나로 올 하반기 서울 전역을 대상으로 빈집 실태조사를 해 내년 초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는 빈집 관리 전담부서 TF팀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빈집 300만 시대는 분명 또 하나의 골칫거리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빈집이 오히려 도시와 지역 재생의 기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청년들에게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연 인구쇼크의 결과물인 빈집을 잘 활용해 ‘비즈니스 성공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주어진 숙제이자 도전의 기회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