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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편. 정답은 ‘다운사이징’이다?

▲ 영화 ‘다운사이징’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내 몸의 부피를 0.0364%로 축소시키고 몸무게도 2744분의 1로 줄인다. 대신 1억 원의 재산이 120억 원의 가치가 되어 왕처럼 살 수 있게 된다.’

만약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는 영화 ‘다운사이징’의 뼈대가 되는 가상의 설정입니다. 이 영화는 인구과잉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인간 축소 프로젝트’인 다운사이징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주인공 ‘폴’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다운사이징(down-sizing)’이 우리 사회 인구문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물론 사람을 인위적으로 작아지게 만드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다운사이징이란 “급격한 인구 변화의 충격을 줄이면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전체 사회를 새로운 인구 구조에 맞게 재설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것을 ‘다운사이징 코리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전에 나오는 다운사이징의 뜻풀이는 ‘크기를 줄이는 작업’ 소형화, 축소 등을 의미합니다. 기업 경영에서 ‘다운사이징’은 불황에 대비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이나 기구를 축소하거나 인원을 삭감하는 것을 말합니다. ‘컴퓨터 다운사이징’은 대규모 메인프레임 서버 대신 소규모 PC를 연결하는 분산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요즘 자동차 업계에서는 엔진 배기량을 줄이면서도 높은 성능을 발휘하는 ‘엔진 다운사이징’이 큰 화두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운사이징’ 트렌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규모와 크기는 줄어들지만 효율은 과거보다 높아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최적화(optimization)’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을 갈아엎고 완전히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최대한 인정하고 활용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죠.

 

그러면 인구쇼크에 대응한 ‘다운사이징 코리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여러 지표가 보여주듯 우리나라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부는 물론 기업들까지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문가들도 ‘인구쇼크’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설명합니다. 만약 기적처럼(?) 갑자기 출산율이 급등하고 그 출산율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걱정하는 인구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이 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2002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평균 45만 명 이하의 아이가 태어났고 갑자기 출산율이 상승하더라도 지난 시간의 공백을 메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전문가들은 우리의 목표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인구를 ‘늘려’ 사회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구 감소를 받아들이고 줄어드는 사회 크기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죠. ‘다운사이징 코리아’는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속도로 성장을 이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 속에는 남들보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빠르게’ ‘더 부유하게’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사회 한편에서는 이런 의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제 더 크고, 더 높은 것만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한 방향만으로 달려가는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전문가들 중에는 미래의 인구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인구가 반드시 계속 늘어나는 것만이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인구 감소의 큰 흐름을 단기간에 돌려놓기 힘든 상황이라면 현재의 인구쇼크를 받아들이고 적응해가면서 살아가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교육시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대학 입학을 원하는 학령인구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 정책이나 각 학교에서는 각종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대학 수를 줄이거나 학과 통폐합 등을 통해 교직원 수를 감축하고 있습니다.

▲ 학령인구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들어 입학 가능한 고졸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존폐의 기로에 선 대학들의 처지가 절망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이런 흐름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대학에 가졌던 인식과 관념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대학은 이미 고등학교3학년 학생이나 재수생들만 입시를 준비하는 곳이 아닙니다. 인생 N모작을 대비하는 중년과 선취업 후대학을 준비하는 사람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교육 시장 수요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인구변화에 맞춰 적응 과정을 거치게 되면 10~20년 뒤 대학의 역할과 정의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전문가들은 사회 규모를 줄이는 것은 모든 연령대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위 사례처럼 대학을 다운사이징 한다면 10년 뒤에도 대학이 지금처럼 19~20대 초반만의 교육을 위한 곳이어야 하는지, 대학입시는 어떤 형태로 유지되어야 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사회의 체질 개선과 최적화 과정은 인구변동의 큰 맥락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세계 인구문제를 미리 예측해 획기적인(?) 대책을 선보인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구학적 관점’이 미래를 재설계 하는 ‘다운사이징 코리아’의 지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작아지는 사회 규모에 맞게 제도와 문화, 인식까지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인구변화에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최적화함으로써 각자의 생존 전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