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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연구원이 학교가 아닌 기업으로 향한 이유는?

보통은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입사한다. 그러나 돈이 아닌 공부를 하고 싶어 입사하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ICT(정보통신기술) 업계다. 학교에 비해 인프라가 잘 갖춰진 기업은 신기술을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천국과 같다. 예컨대 대형 ICT기업은 인공지능(AI)을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수백 대 보유하고 있다. 상위권 대학 내 이른바 ‘잘 나간다’는 랩(연구실)’에서는 1인당 1대 정도의 GPU를 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에는 학계보다 한 발짝 앞서 기술의 활용과 발전상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 학교처럼 이론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기술을 빠르게 현장에 적용해 실현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AI와 같이 기술 변화 속도가 급격한 분야를 연구해온 이들이 더 이상 학교가 아닌 기업으로 향하기 시작하는 이유다.

올해 초 SK텔레콤(이하 SKT) AI센터 소속으로 입사한 홍성은(32) 매니저는 입사 후 지금까지 준비 중인 논문을 포함해 총 3편의 논문을 썼다. 얼마 전엔 AI 분야에서 인지도가 높은 학술대회 중 하나인 유럽컴퓨터비전학술대회(ECCV)에 출장을 갔다. 최신 기술 동향을 공부하고 전 세계 AI 분야 연구자들과 교류를 하라는 취지로 회사에서 보내 준 출장이다. 입사한지 1년도 안돼 벌써 서너 번 해외에 다녀왔다. 홍 매니저와 정원진(32) 매니저를 만나 ICT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영역인 AI 관련 직무와 산업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공부하러 학교에 남는다는 것은 ‘옛말’

“꼭 학교가 아니더라도 기업에서도 해 보고 싶은 분야를 더 깊이 연구하면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홍 매니저의 직무는 ‘AI 리서치 사이언티스트(Research Scientist)’다. 카이스트 전산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2018년 1월 SKT에 입사했다.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는 AI 핵심 기술을 연구하는 동시에 전 세계 AI 전문가, 석학들과 교류를 통해 AI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홍성은 매니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구를 하고 싶다’는 친구들은 기업이 아니라 학교에 남았어요.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딥러닝(AI의 한 분야)이 부상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죠. 기업이 갖고 있는 인프라 때문입니다. 실험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를 기업에서는 짧게는 몇 시간 만에 실험해 볼 수 있거든요. AI를 하기 위해서는 GPU가 반드시 필요한데요. 소위 잘 나간다는 랩도 한 사람당 한대 밖에 확보할 수 없는데, 회사에는 수백 대의 GPU가 있거든요. 배운 것을 곧바로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은 큰 장점이죠.”

그의 말대로 ‘연구하기 위해 학교에 남겠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지금처럼 기술 변화가 급속도로 빠른 시대에는 학교보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기업에서 연구하는 것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기에 유리하다. 기업도 나쁠 것이 없다. 기술을 실생활에 좀 더 빠르게 적용해 볼 수 있고 세계적 학술대회에서 수준 높은 논문을 발표한 직원이 있는 회사의 가치도 올라가기 때문. 학술대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 인재를 영입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 매니저는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기업들이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곳곳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를 부지런히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2016년 SKT AI센터 티브레인 총괄로 온 미국 MIT 출신 김지원(33) 상무는 세계 학술대회를 찾아 다니며 논문을 발표하면서 회사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기업이 인재를 얻으러 세계적인 학술대회를 찾는 것은 과거엔 흔치 않았던 장면이다. 이는 AI분야에서 업계와 학계 간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홍 매니저의 설명이다.

홍성은 매니저: “AI가 핫(HOT) 한 분야가 되면서 국제 학술대회에서도 단연 주목을 받고 있어요. 논문을 써서 세계적인 학술대회에서 주목을 받으면 개인뿐 아니라 회사 위상이 올라가죠. 저명한 학술대회에서 수상한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되면 유수 회사들이 영입을 하려고 안달을 냅니다. 우리가 그곳을 찾는 이유도 회사 명성을 높이면서 좋은 인재를 찾기 위해서고요.”

“AI에 어떤 데이터 넣고 어떻게 학습시킬지가 중요”

▲ SK텔레콤 AI센터 정원진 매니저

SKT의 AI센터는 전사 AI 전략을 총괄하는 곳이다. 올해 9월 조직개편을 하면서 ‘서비스 플랫폼 사업부’와 ‘AI리서치센터’를 합해 ‘AI센터’를 만들었다. 기술과 사업을 더욱 긴밀하게 연계하기 위해서다. AI센터에는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뿐 아니라 각각 담당하고 있는 연구 주제와 관련한 기술을 파고드는 엔지니어들이 일한다.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인 홍 매니저가 연구하는 분야는 시각적 질의응답(Visual Question Answering⋅VQA)이라는 분야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AI에 이미지를 한 장 주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질문을 주고 AI가 적절한 응답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홍성은 매니저: “이미지 한 장과 이와 관련한 자연어 질문을 세트로 준 뒤 AI가 적절한 응답을 생성할 수 있게 훈련시키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사진을 주고 남성이 몇 명 있느냐라는 질문을 하면 AI가 답을 할 수 있게 하는 식이죠. AI스피커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AI스피커에 달린 카메라에 특정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고 ‘이 연예인이 나오는 영상을 찾아줘’라고 하면 연결된 TV로 해당 연예인이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는 식입니다.”

그와 함께 AI센터에서 일하는 정원진 매니저는 세종대 전자공학과 석사를 마치고 퀄컴코리아에서 음성인식 분야를 연구했다.

정원진 매니저: “퀄컴에서 음성인식을 연구하다가 당시 함께 회사를 다니던 분이 모션인식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을 차려서 합류하게 됐어요. 거기서 2년 일하면서 모션인식, 딥러닝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도 비슷합니다. AI를 활용해 이미지, 오디오 등을 생성하고 변환해주는 연구를 합니다. 예컨대 동일인의 머리카락 색상을 검은색에서 갈색으로 바꾸거나 특정 장소의 풍경을 여름에서 겨울로 바꾸는 것이죠. 이런 기술은 자율주행에 활용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항상 맑은 날에만 운전할 수는 없잖아요. 자율주행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A 도로’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죠.”

A 도로의 데이터에 맑은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등 다양한 날씨의 변수를 인식할 수 있다면 자율주행차가 오류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것이 A도로’라는 것을 인지하고 안전한 운행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부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이 하는 일의 공통점은 ‘데이터를 다룬다는 것’에 있다. AI전문가들이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데이터 선별’이다. AI가 올바른 답변을 내놓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데이터’다. 질 좋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매칭해 학습을 시켜야 결과값이 좋기 때문이다.

정원진 매니저: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어렵지만 학습을 위해 이를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에요. 자율주행을 연구하기 위해 실제 도로에 자동차를 운행시켜 수많은 데이터를 모아야 합니다. 통신회사가 받는 엄청난 데이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처리하는지는 AI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실제 지금 업계에서는 AI에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학습을 시키느냐의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죠.”

“AI가 일자리 빼앗는 역할만 하는 건 아냐”

▲ SK텔레콤 AI센터 홍성은 매니저

이동통신업계는 유무선 사업을 뛰어넘어 AI, 자율주행에 사활을 걸고 있다. 통신업체는 기존 통신망과 데이터를 활용해 신기술을 여러 기기와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자율주행 시대에 빠져서는 안될 인프라인 5세대(5G) 통신 주도권도 갖고 있다. 통신사가 AI를 활용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정원진 매니저: “스마트폰을 통해 알 수 있는 생활패턴이라는 데이터를 갖고 더 똑똑한 개인비서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SK그룹의 다양한 계열사들과 함께 스마트시티, 자율주행차, 스마트홈 등을 아우르는 맞춤형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홍성은 매니저: “지금 연구하고 있는 AI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지는 연구자 입장에서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약간 비약을 섞어 상상해본다면 SKT가 제공하는 T멤버십이나 AI 서비스 ‘누구’의 질을 높이는데 활용할 수 있겠죠. 활용 분야는 정말 무궁무진할 겁니다.”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AI의 미래는 어떨까. ‘똑똑한 AI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까지 섭렵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묻자 둘 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원진 매니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나 불량품 확인 노동자 같은 단순 직종은 확실히 많이 없어질 것 같아요. 그렇다고 AI가 사람을 위협하는 식으로 가진 않을 거라고 봐요. 기술이 발전해도 새로운 일은 끊임없이 창출된다고 보거든요. 사람이 AI와 다른 쪽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홍성은 매니저: “AI는 피해 갈 수 없는 물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잘 하는 것과 AI를 잘 결부시키는 방법을 고민하는 자가 성공하지 않을까요? 회사에 와서 다양한 부서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다 보니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니즈(needs)’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요. 거대한 흐름을 막는다고 막을 수는 없으니 이를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AI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겉 멋을 빼라’고 당부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라고 말했다.

정원진 매니저: “요즘엔 코드가 공개돼 있어서 이를 그냥 돌려보기만 해도 결과를 바로 확인해 볼 수 있어요. 마치 내가 직접 한 것 같은 환상에 빠지죠. 머신러닝에 대한 기본 지식, 코딩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고요.”

홍성은 매니저: “회사에 와서 ‘학교 다닐 때 기초 과목을 좀 더 열심히 공부해 뒀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연구하는 알고리즘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 공학 등의 기초를 탄탄히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술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새로운 논문이 하루가 멀다 하게 나와요.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도 AI 연구를 하는 데 있어 필요한 역량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