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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이 힘이다? 중국 스마트폰 경쟁력의 원천

▲ 글로벌 질주를 시작한 중국 스마트폰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무섭게 질주하고 있습니다. 2013년 혜성처럼 등장한 샤오미를 시작으로 작년부터 여러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오포와 비보, 그리고 얼마 전 2분기에는 애플을 누르고 삼성전자 다음으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한 화웨이까지 하루하루 등장하는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입니다. 아직은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진 않았지만 일부 스마트폰 마니아들 사이에선 중국 스마트폰을 직구 방식으로 구입해 사용해 보고 사용성이나 성능을 측정해 인터넷에 공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근 분위기는 품질이나 디자인 측면에서도 꽤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제품들도 상당수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격 측면의 장점은 당연히 가져가는 중국 스마트폰들의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제품의 사양을 보면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나 ‘LG전자’가 만드는 스마트폰보다 좋거나 비슷한데 가격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구나 과거의 평가와는 달리 최근엔 품질이나 성능, 디자인도 수준 이상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제품을 만들어 팔아도 망하는 업체들이 나오지 않는 걸까요? 이런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경쟁력의 원천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짝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흔히 명품 제품을 그대로 베껴 제품을 만들어 파는 걸 떠올리기 쉽지만 중국은 이러한 패션,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디지털 제품, 특히 스마트폰도 짝퉁 제품이 많습니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삼성전자의 ‘갤럭시’ 제품은 정말 겉모습이 너무도 똑같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이게 정품인지 헷갈릴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이런 짝퉁 제품에 대해 중국에선 산짜이(山寨)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한자어를 그대로 읽어 보면 산채를 뜻하는 단어인데요. 왜 한국어로 산채가 짝퉁이란 의미로 중국에선 통용되는 걸까요? 사실 단어의 실제 유래는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인 ‘수호전’에서 유래된 단어로 한자음의 산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는 공권력이 통하지 않는 지역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최초의 산짜이 집단은 중국 광동성의 산촌 지역에 수많은 공장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이 명품을 모조하고 이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산짜이가 모조 제품을 만들어 파는 걸 의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속사정을 살펴보면 개혁, 개방 정책을 펼쳤던 중국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중국의 개혁, 개방 초기의 상황은 드넓은 땅과 수많은 사람을 빼곤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없었습니다. 전적으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기업들에 의존해야 했고 이들 기업의 기술과 연구 개발 능력을 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1960년대에서 70년대의 산업화 시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런 기술이 없던 중국 업체들은 그래도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남의 제품을 베끼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베끼기 쉬운 겉모양 만을 따라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제품의 내부 기술을 이해하고 이걸 따라 만들 정도의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따라 만드는 업체들 간에도 경쟁이 시작되고 좋은 제품을 분석하며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업체들 하나둘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부 설계나 구조도 따라 할 수 있게 됐고 이게 기술력으로 쌓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런 기술력이 단기간에 향상되는 데는 업체들의 노력 외에 외부 환경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던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조력자 미디어텍? 너는 누구냐?

▲ 중국 스마트폰을 일으킨 미디어텍의 턴키(Turn-key) 

다른 제품의 겉모습이나 그 안에 숨겨진 기술을 베끼는 산짜이 업체들에게도 고민은 있었습니다. 제품을 베껴서 파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품을 만들어 팔면서 좀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싶어졌고 좀 더 쉽고 빠르게 만들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을 따라 만드는 것과는 달리 내부의 회로나 구조,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산짜이 업체들이 쉽게 따라 하기엔 분명 큰 벽이었습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조력자가 바로 미디어텍이라는 이름의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스마트폰의 두뇌라고 부르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만드는 업체였는데요. 이 업체는 스마트폰이 점점 모듈화되고 있다는 부분에 착안해 새로운 판매 방식을 도입하게 됩니다. 쉽게 얘기하면 자사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사면 덤으로 해당 프로세서를 이용해 스마트폰을 설계할 수 있는 설계 가이드 디자인을 제공해 줍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미디어텍은 산짜이 업체들에게 제품을 만들면서 필요한 다양한 성능 시험과 그에 맞는 최적화 해법,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스마트폰에 탑재하면서 발생하는 소프트웨어의 최적화나 문제 해결까지 스마트폰용 프로세서 하나를 사면 토탈 케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산짜이 업체들 입장에선 흐린 하늘에서 한줄기 빛을 본 것처럼 자신들의 능력을 쉽게 도약시킬 수 있는 제안이었습니다.

물론 미디어텍 입장에선 판매 확대에 따른 브랜드 인지도 향상과 향후 잠재적 고객일 수 있는 업체들과의 관계 형성, 자사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의 실제 시장에서의 검증 등 다양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텍은 이러한 판매 방식을 ‘턴-키(Turn-Key)’라고 부르면서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중심으로 거래선을 확대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산짜이 업체는 이런 기술 지원 덕분에 단시간에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미디어텍은 순식간에 퀄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업체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의 도약을 하다_화이트 박스(ODM)

▲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ODM’

실력을 키운 산짜이 업체는 또 한 번 도약을 시도합니다. 바로 자기만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내부에서 스스로 제품을 기획, 디자인하고 개발해서 제품을 판매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업체간의 경쟁과 더 이상은 남의 것만 베껴서는 큰돈을 벌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자신들의 제품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브랜드를 갖고 브랜드 파워를 키워 유통하는 부분에 있어선 전혀 경험이 없었습니다.

특히, 글로벌 시장은 이런 업체들의 입장에선 말 그대로 미지의 세상이었습니다. 결국 업체들은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은 하지만 제품 표면이나 박스에 로고 없이 제품을 생산하게 됩니다. 아무런 인쇄가 되어 있지 않은 제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든 고객사가 원하는 로고와 패키지 인쇄를 해서 제품을 인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화이트 박스,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이런 화이트 박스 업체의 몇 가지 제품을 예로 들어 보면, 프랑스 로컬 스마트폰 업체인 Wiko사의 ‘Highway Pure 4G’ 모델은 미국 로컬 스마트폰 업체인 BLU사의 ‘Vivo Air LTE’라는 제품이나 인도 마이크로맥스사의 ‘Canvas Siver5 Q450’이라는 제품으로 재판매 됐습니다. 한마디로 쌍둥이 제품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중국 지오니(Gionee)사의 ‘Elife S5.1’이라는 제품의 경우, 미국 BLU사의 ‘Vivo Air’와 동일한 제품으로 판매되고 BLU사 기준으로 볼 때 Vivo Air와 Vivo Air LTE는 동일한 디자인에 4G 지원 등 몇 가지 차이만을 두고 나머지 부품을 공용화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모델을 개발해서 완전히 동일한 제품을 다른 지역의 다른 브랜드로 재판매하거나 기존 적용된 대부분의 부품을 그대로 적용하고 일부 부품만을 변경하여 부품의 대량 구매를 통해 원가 절감을 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낮은 마진에도 화이트 박스 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 글로벌 시장 점유울 2등을 넘보는 화웨이, 출처: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올해 2분기 애플을 제치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 2등 자리를 차지한 화웨이가 앞에서 설명한 화이트 박스 업체에서 출발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화웨이뿐만 아니라 몇몇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화이트 박스 업체처럼 다른 국가의 스마트폰 유통 업체들의 제품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업체들이 이런 전략을 채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화이트 박스 업체들로 인해 중국의 스마트폰 생태계가 형성되고 커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됩니다. 중국의 스마트폰 생태계는 부품 업체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업체,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최적화해주는 업체, 제품을 조립하는 업체, 박스나 인쇄를 하는 업체, 그리고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있는 기술자들까지 하나의 국가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부 화이트 박스 업체가 사물 인터넷 관련 제품이나 전기 자동차 관련 분야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때, 짝퉁을 생산하는 산짜이 기업이라 불리던 중국의 스마트폰 업체들. 이제는 중국 IT 분야의 기술 경쟁력을 지탱하는 원천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글. 최형욱(커넥팅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