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과목의 수업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싫어하는 과목의 수업 시간은 길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이를 ‘시간의 왜곡’으로 표현했습니다. 즉 좋아하는 수업시간에는 ‘몰입’을 하기에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요즈음 무엇에 몰입하고 계신가요? 몰입이 끝난 이후에는 달콤한 충만함이 느껴지나요? 아니면 쌉쌀한 허무함이 남나요?
몰입(Flow)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경험
▲ 몰입 이론(출처: 칙센트미하이(1990), Flow, 최인수 역, 한울림)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의 선구자인 칙센트미하이는 1990년 ‘몰입 이론(Flow Theory)’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Flow는 몰입을 의미하죠. 몰입 상태는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느끼게 되는데요. 이런 의미에서 그는 ‘Flow’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몰입 이론에서 칙센트미하이는 개인의 능력과 주어진 과업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몰입이 잘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아울러 그는 ‘물질적인 것이 행복을 충족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적적(Autotelic)으로 몰입을 잘하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자기 목적적’이란 결과에 대한 기대 없이 일을 수행하는 것 자체로 만족과 보상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그렇기에 몰입의 힘은 그 자체로 즐거우며, 부수적으로는 성과를 향상시키고 창조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몰입 대상이 온라인 ○○이라면?
그렇다면 요즘의 우리는 어떤 것에 몰입하고 있을까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 중인 현재, 우리는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나는 일도, 새로운 모임을 찾는 일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내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은 한층 더 나의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게시판·게임·소셜미디어·쇼핑·OTT 서비스 등 다양한 플랫폼은 TMI(Too Much Information)를 한가득 준비하고, 끊임없이 유혹의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이 몰입하고 있는 무언가가 인터넷은 아닌가요?
필터 버블이 선사하는 달콤한 몰입(Sweet Flow)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용자 취향에 맞춘 정보가 필터링되어 제공됨으로써 이용자가 편향된 혹은 편협한 정보만 접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 테크 기반 기업이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여 좋아할 만한 콘텐츠 위주로 제공하는 방식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필터 버블은 주로 개인 맞춤화된, 즉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친근한 정보나 입맛에 맞는 뉴스만을 선택적으로 제공합니다. 때문에 확증 편향을 가져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성향을 말하죠. 이러한 확증 편향과 함께 생각해 볼 문제가 있는데요.
바로 인터넷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유튜브·소셜미디어 플랫폼뿐 아니라 쇼핑 플랫폼도 알고리즘을 활용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제품을 추천합니다. 물론 편리함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는 더 오래 플랫폼에 머물게 됩니다. 결국엔 계획하지 않았던 물건을 사거나 불필요한 콘텐츠까지 보게 됩니다.
이러한 달콤한 몰입의 결과는 때때로 소중한 시간을 사라지게 합니다.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Flow)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면, 지나치게 몰입하는 ‘과의존(중독)’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릅니다.
VR·AR,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다
▲ 시간 흐름에 따른 로블록스(Roblox) 관심도 변화(출처: 구글 트렌드)
정보통신기술은 우리가 온라인 세상에 점점 더 빠져들기 쉽게 만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단어를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는 가상 공간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입니다. 확장된 현실 공간을 의미하죠.
대표적인 예로 로블록스(Roblox)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메타버스 플랫폼은 다른 이용자가 만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게임 제공자는 이 플랫폼을 통해 얻은 이익을 현실 화폐로 전환할 수 있는데요. 현재 로블록스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이용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2003년에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라는 유사한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술적인 한계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반면 2021년에는 VR·AR 기술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습니다. 더욱이 로블록스처럼 사용자가 실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모델도 등장했는데요. 이렇듯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도 우리를 메타버스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생태계 이해와 현실 자각 능력 필요해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로운 서비스의 출현은 당연합니다. 사람들은 서비스를 이용하며 문화를 만듭니다. 따라서 메타버스 등은 막아야 할 서비스·기술이 아니라 흐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몰입과 불필요한 과의존, 이 선택의 순간에서 현실을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죠. 아울러 우리는 스마트폰을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는 행동이 아닌, 달콤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보다 긍정적인 몰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글. 오주현(연세대학교 바른ICT연구소, 사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