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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36주년 기념 | History of SKT] 1편, SK텔레콤의 첫걸음

SKT 36주년

이동통신의 역사를 말할 때 사람들은 단말기의 변천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 단말기에 ‘숨을 불어넣는’ 통신기업의 역사는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SK텔레콤의 시작은 어떠했을까요?

2020년 3월 29일, SK텔레콤이 창사 36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동통신의 역사와 함께해 온 SK텔레콤이 창사 36주년을 기념하여 SK텔레콤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총 3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오늘은 1편, SK텔레콤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SKT 텔레콤, 창사36주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동통신
SK텔레콤, 차량 전화 현장 사무실(1984)
SK텔레콤, 무선호출 10만 가입자 돌파
SK텔레콤. 88서울올림픽 통신 지원
SK텔레콤, 차량 전화 현장 사무실(1984) SK텔레콤, 무선호출 10만 가입자 돌파 SK텔레콤. 88서울올림픽 통신 지원

▲이미지 1. 88서울올림픽 통신 지원 감사패 /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 현판식(1984.3)
▲이미지 2. 무선호출 10만 가입자 돌파 기념식 현장(1988.12)
▲이미지 3. 차량 전화 현장 사무실(1984) / 차량전화 이용안내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는 통신 품질 개선을 위해 ‘통신사업 경영체제 개선’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체신부는 공사(公社)인 한국전기통신공사를 설립해 전기통신 업무를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1984년 3월에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출범해 차량 전화와 무선호출 등 무선통신 서비스를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1988년 4월 한국이동통신㈜로 거듭나면서 독립사업자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휴대용 이동전화 서비스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이동통신 시대를 열었습니다.

한국이동통신은 장비 국산화와 운용 기술 등 기술 자립에 성공하며 국내 이동통신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91년 12월, 이동통신 가입자 수 10만 명을 돌파하면서 바야흐로 이동통신 대중화 시대가 활짝 열렸습니다.

선경그룹이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제2 이동통신 사업자 발표 모습
SKT TV광고 차범근 편. 1992.7
제2 이동통신 사업자 발표 모습 SKT TV광고 차범근 편. 1992.7

▲이미지 1. 한국이동통신 주식 23% 매입 ▲이미지 2. TV광고 차범근 편. 1992.7

통신사업은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체신부는 1990년 7월 ‘통신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한국이동통신 이외의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진행합니다.

선경그룹은 정보통신사업 준비를 본격화합니다. 선경그룹은 故 최종현 회장의 확고한 의지 하에 1980년대부터 10여 년간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 매진해왔습니다. 1980년 11월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 후, 다음 단계의 장기 경영목표를 정보통신사업 진출로 정하고 ‘2000년대 세계 일류의 정보통신기업’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1986년에는 미주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 팀을 발족하고 미국의 정보통신 관련 정보와 기술을 습득합니다. 1989년 10월에는 미국 뉴저지에 현지법인 유크로닉스社를, 1990년에는 선경정보시스템을, 1991년에는 선경텔레콤(1992년 대한텔레콤으로 변경)을 연이어 설립하며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합니다.

정보통신 사업에 대한 국내 기업의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1991년 8월, 체신부 장관 명의로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관한 주요 기준 발표 이후, 1992년 7월, 1차 결과가 발표까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선경의 대한텔레콤이 1위, 포항제철과 코오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1992년 8월 발표된 2차 심사 결과도 1차 심사 결과와 동일했습니다. 선경그룹 대한텔레콤이 8,388점이라는 최고점수를 획득함으로써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최종 허가법인으로 선정됩니다. 2위는 포항제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이 7,496점, 3위는 코오롱의 제2 이동통신이 7,099점을 받았습니다.

대의를 위한 큰 결단, 사업권 반납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묘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현직 대통령과 최종현 회장의 사돈 관계가 이슈가 됐습니다. 당시 여당인 민자당 김영삼 대표는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심각한 우려를 전달합니다.

결국 1992년 8월, 선경그룹은 제2 이동통신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습니다. ‘합법적 절차와 공정한 평가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되었음을 밝히고 ‘오해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권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체신부도 다음날 차기 정권으로 이양한다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결과는 불과 1주일 만에 백지화되었습니다.

SK텔레콤의 탄생

한국이동통신 CI 변천사

▲선경의 한국이동통신 지분 매입 이후 열린 임시주주총회 모습. 선경의 이동통신 사업 성공의 신호탄이 됐다 / ▲한국이동통신 CI 변천사

1993년 2월, 문민정부가 대한민국에 새로운 뿌리를 내렸습니다.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도 새로운 토양에서 새로운 각오로 시작되었습니다. 선경그룹과 2위를 차지한 포항제철은 ‘정치적 부담’을 털어낸 가운데 사업권 획득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서둘러 나갔습니다.

1993년 12월, 체신부는 2차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방식을 발표했습니다. 1차와 달리 사업자 선정을 민간 자율에 의한 단일 컨소시엄 방식으로 확정하고, 컨소시엄 구성을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한국이동통신 주식지분(64%) 중 민간업체가 경영권을 획득하는 데 충분한 규모의 주식(54%)을 매각하도록 해 이동전화사업 신규 허가와 한국이동통신민영화를 연계해 추진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전경련 회장직을 맡던 최종현 회장은 선경그룹이 또 한 번 제2 이동통신 사업에 참여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일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미 1992년에 사업권을 반납했지만 어떤 특혜 시비도 없도록 컨소시엄에도 불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막대한 인수 자금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선경그룹이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 성공한 것은 1994년 1월 공개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확보하면서 입니다. 선경그룹의 제2이동통신 사업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공개입찰을 통해 경영권을 인수해 정당성과 공정성을 모두 획득한 것입니다.

선경그룹 외 경남창업그룹, 한신기술개발금융, 파이스트 인베스트먼트, 한국유통조사연구소 등 4개社와 개인 285명이 참여했지만, 예정 가격 미달로 주식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이동통신 경쟁 체제의 완성

SK텔레콤 CI선포식

선경그룹이 컨소시엄 미참여를 선언한 가운데 전경련은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포항제철, 코오롱, 금호그룹을 대상으로 합동 면접 심사를 실시합니다. 전경련은 1994년 2월 포항제철을 제2 이동통신 사업자의 1대주주로, 코오롱을 2대주주로 선정해 체신부에 통보했습니다.

이로써 1990년 7월 통신사업 구조조정 발표 순간부터 3년여에 걸쳐 추진되었던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비로소 일단락되었습니다. 이동통신사업의 경쟁체제가 도입되며 이후 우리나라 이동통신 서비스는 질과 양 모든 면에서 획기적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2편. [기술이 최고의 경쟁력(2G부터 4G까지 기술 변천사)]에서 계속…

skt, sk텔레콤, 창립36주년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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