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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창립 37주년 특별기획] 1편, 국내 1위 통신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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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9일, SKT가 창사 37주년을 맞이합니다. 1984년부터 모바일 산업 혁신을 주도해 온 SKT는 2018년 세계 최초 5G 네트워크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이동통신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세대를 거듭 할 때 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편의를 선사해 온 이동통신. 이제 이동통신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요. SKT가 이끌어 온 37년 대한민국 이동통신의 역사. 그 시작은 어떤 모습 이었을까요? 창립 37주년 특별 기획 1편. SK텔레콤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위한 10년의 빛나는 노력

선경그룹(現 SK그룹)은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10여 년 간 매진했습니다. 故 최종현 회장은 1980년 11월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한 이후 다음 단계의 장기 경영목표를 정보통신사업 진출로 정하고, ‘2000년대 세계 일류의 정보통신기업’을 선경그룹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1984년 미주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발족하고, 미국이 보유한 정보통신 관련 정보기술을 습득하게 했습니다. 또, 1989년 10월에는 미국 뉴저지 주에 현지법인 유크로닉스社를, 1990년에는 미국 CSC사와 합작으로 선경정보시스템을, 1991년에는 선경텔레콤(1992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 등을 연이어 설립하며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한국이동통신 인수는 이러한 10년 노력과 철저한 준비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본격적인 이동통신 시대의 서막을 열다

정부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통신 품질 개선을 위한 ‘통신사업 경영체제 개선’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체신부는 공사(公社)인 한국전기통신공사를 설립해 전기통신 업무를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1984년 3월에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출범해 차량 전화와 무선호출 등 무선통신 서비스를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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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88서울올림픽 통신 지원 감사패 (우)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 현판식(1984.3)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1988년 4월 한국이동통신㈜로 거듭나면서 독립사업자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휴대용 이동전화 서비스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이동통신 시대를 열었습니다.

한국이동통신㈜은 장비 국산화와 운용 기술 등 기술 자립에 성공하며 국내 이동통신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91년 12월, 이동통신 가입자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바야흐로 이동통신 대중화 시대가 활짝 열렸습니다.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서 1위를 차지하다. 하지만,

통신사업은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체신부는 1990년 7월 ‘통신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한국이동통신 이외의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진행합니다.

정보통신 사업에 대한 국내 기업의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1991년 8월, 체신부 장관 명의로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관한 주요 기준 발표 이후, 1992년 7월, 1차 결과가 발표까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선경의 대한텔레콤이 1위, 포항제철과 코오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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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이동통신 사업자 발표 모습(1992.8)

1992년 8월 발표된 2차 심사 결과도 1차 심사 결과와 동일했습니다. 선경그룹 대한텔레콤이 8,388점이라는 최고점수를 획득함으로써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최종 허가법인으로 선정됩니다. 2위는 포항제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이 7,496점, 3위는 코오롱의 제2 이동통신이 7,099점을 받았습니다.

최고점수로 획득한 사업권을 자진 반납한 이유

1992년 8월, 선경그룹은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습니다.

그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묘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당시 여당인 민자당 김영삼 대표는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심각한 우려를 전달합니다.

선경그룹은 ‘합법적 절차와 공정한 평가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되었음을 밝히고 ‘오해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권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체신부도 차기 정권으로 이양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막대한 금액으로 1위 사업자 한국이동통신 인수…SK텔레콤의 탄생

1993년 2월, 문민정부가 대한민국에 새로운 뿌리를 내렸습니다. 선경그룹은 ‘정치적 부담’을 털어낸 가운데 사업권 획득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故 최종현 회장은 선경그룹이 또 한 번 제2 이동통신 사업에 참여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일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미 1992년에 사업권을 반납했지만 어떤 특혜 시비도 없도록 컨소시엄에도 불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막대한 인수 자금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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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선경의 한국이동통신 지분 매입 이후 열린 임시주주총회 모습 (우) 한국이동통신 CI 변천사

선경그룹이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 성공한 것은 1994년 1월 공개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확보하면서 입니다. 한국이동통신 주가는 당시 8만원 수준이었는데, 민영화 소식과 선경그룹의 참여가 알려지자 30만원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선경그룹은 당시 시가를 훨씬 뛰어넘는 주당 33만 5천원에 투찰하여 한국이동통신 주식 23%를 인수합니다.

선경그룹은 공개입찰을 통해 경영권을 인수해 정당성과 공정성을 모두 획득한 것입니다.

선경그룹 외 경남창업그룹, 한신기술개발금융, 파이스트 인베스트먼트, 한국유통조사연구소 등 4개社와 개인 285명이 참여했지만, 예정 가격 미달로 주식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이동통신 경쟁 체제, 드디어 완성되다

이로써 1990년 7월 통신사업 구조조정 발표 순간부터 3년여에 걸쳐 추진되었던 이동통신 경쟁체계 재편은 비로소 일단락되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 이동통신 서비스는 획기적 발전을 이룩하게 됩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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