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톡터뷰>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에 AI가 적용됐을 때 일상의 변화에 대해 대화하는 전문가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 전문가 박진호 교수
AI가 문화유산 활용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우리의 문화 예술적 향유를 더욱 풍요롭게 해줄 문화유산 속 AI 기술의 현주소는 어떤 모습일까? 불국사, 석굴암, 무령왕릉, 고구려 고분벽화 등 디지털 복원에 기여하고, AI를 활용해 과거의 문화유산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며 그려내는 ‘미래적 복원’에도 주력하고 있는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 전문가 박진호 고려대학교 연구교수와 이야기 나눠봤다.
7세기 한반도인과 현재의 우리가 대화할 수 있다면?… ‘실크로드 GPT 프로젝트’
최신 문화유산 전시 트렌드는 ‘실감 콘텐츠’이다. 관람객이 직접 만지고, 느끼며,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유산을 더욱 친숙하게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가 박진호 교수는 최근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중 벽화에 등장하는 7세기 한반도인과의 소통을 주제로 연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최신 XR기술인 버추얼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에 구현해본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 디지털복원도의 모습. 35m 초대형 미디어월 형태로 12K급의 초고해상도를 자랑한다.
1965년,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전터 제1호실 서벽에서 당시 소그디아나 왕국을 방문한 각국 사절단을 그린 궁중 벽화가 발견되었다. 이 벽화에는 고대 한반도(고구려 또는 신라로 추정) 사절단의 모습도 등장한다. 이는 당시 한반도의 서역 교류사를 증명해 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하지만 발굴된 지 50년이 지난 2014년, 벽화의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더 이상 손상되지 않게 보존하는 게 시급해졌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7세기 당시의 원형으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맡은 박진호 교수는 이런 문화유산을 미래 세대가 좀 더 가치 있게 향유하길 희망한다.
박진호 교수 뒤편으로 보이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궁중 벽화 모사도(模寫圖). 오른쪽 끝에 있는 인물 2명이 고구려인으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AI를 활용해 벽화 속 인물들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을 재현하고, 관람객이 벽화 속 인물들과 직접 소통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다행히 AI 기술 덕분에 이러한 생생한 체험의 길이 열렸다. 그는 AI의 가능성과 인간의 전문성을 결합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상의 미래를 잇는 흥미로운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 복원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AI 기술
Q.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이란 무엇인가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여러 첨단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형태로 복원하거나 가공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현재 남아 있지 않은 문화유산을 여러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실존했던 모습 그대로 복원해 내기도 하고, 미래 세대에 전할 만큼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 문화유산을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자료로 변환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AI 기술이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해 문화유산을 복원하면 방대한 데이터를 빨리 정밀하게 분석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존에는 문화유산을 복원하려면, 해당 전문가를 일일이 만나 관련 자료를 수집해야 해 번거로웠는데, AI를 이용하면서 이러한 한계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대면으로 국내 자료는 물론, 해외 자료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향후 AI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면 이러한 장점이 한층 더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Q. AI를 활용한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 사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결과물은 무엇인가요?
이탈리아 피사대학교에서 진행한 ‘폼페이 AI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폼페이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파피루스고대 이집트에서 자란 식물의 일종인 파피루스를 이용해 만든 종이에 기록한 문서를 AI로 정밀 분석해, 훼손된 텍스트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텍스트 복원에는 고대 그리스어와 다량의 파피루스 데이터를 학습한 특별한 AI 모델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AI 모델은 파피루스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플라톤의 무덤 위치에 관한 정보도 밝혀냈는데요. 이 사례는 AI를 활용한 문화유산 복원이 고대 문헌 연구와 고고학적 발견에 혁신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Q. 최근 참여하신 AI를 활용한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가 궁금합니다.
고흐의 그림들을 학습한 AI가 생성한 고흐풍 작품. 박진호 교수는 ‘AI 작품 예측 모델’ 연구가 완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인류의 문화 향유를 더욱 풍요롭게 해줄 ‘AI 아트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반 고흐 After, 생성형 AI를 이용한 반 고흐 사후(死後) 콘텐츠 연구’를 주제로 개인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연구는 ‘만약 고흐가 37세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떤 작품을 남겼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늘날 고흐 그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여전한데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한정적이라 고흐가 생전에 남긴 작품을 심층적으로 학습한 AI가 고흐풍 작품을 다채롭게 생성해 낸다면, 이는 현대 사회가 더욱 풍부한 문화 활동을 향유하는 데 가치 있는 유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만약’이란 가정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의 상상력과 기술을 통해 이를 탐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당시의 문화, 환경 등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AI 작품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인류 역사상 단명했던 예술가들의 미완성 작품을 AI가 예측하는 거죠. 최종적으로는 이를 기반으로 한 ‘AI 아트 플랫폼’ 구축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Q. AI를 활용해 문화유산을 복원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특정 문화유산을 복원할 때는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균형 있게 학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고고학, 역사학, 미술사, 건축학, 문화인류학 등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복원 대상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의미를 깊이 이해한 후에야 신뢰할 수 있는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AI가 특정 시각이나 해석에 지나치게 치우친 데이터만 학습했다면, 그 결과물을 유산으로서 가치 있다고 평가하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Q. 향후 문화유산 AI 복원 사업을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문화재 복원 분야에서 AI의 역할은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육안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세부 사항까지 정밀하게 탐지해 내는 AI의 기술력이 기존의 복원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생성형 AI를 통해 과거의 유산을 바탕으로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해 그려보는 ‘미래적 복원’도 시도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양날의 검처럼, 딥페이크 이슈 등 AI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AI를 두려워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AI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위험하면서도 혁신적인 새로운 동반자와 함께 앞으로 어떠한 유산을 만들어 갈지는 온전히 우리 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진호 교수는 “신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AI를 만들었다”며, “AI와 함께 미래 세대에 어떤 유산을 남기고 창조해 나갈지는 우리의 치열한 고민과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새로운 미래의 문화유산을 만들어나갈 AI 복원 기술의 내일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