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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42주년] 시대를 앞서간 담대한 선택, ICT강국 대한민국 초석이 된 SKT의 시작

오는 3월 29일, SK텔레콤이 창립 42주년을 맞이한다.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 수준의 ICT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해온 SK텔레콤은 이제 AI G3를 향한 도전에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집념과 시대를 앞서간 담대한 결단이 있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미래를 샀던 1984년부터 1994년까지 10년의 기록을 SKT 뉴스룸에서 되짚어본다.

Part 1. 10년을 내다본 혜안, 세계 일류의 정보통신기업을 향한 첫 걸음

SK의 정보통신 사업은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선견지명에서 출발했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 직후, 그는 에너지 다음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정보통신을 낙점하고 ‘2000년대 세계 일류의 정보통신기업’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1984년 3월 29일,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가 공식 출범하고, 같은 해 5월 7일부터 시작된 차량 전화 개통은 대한민국 이동통신의 첫 발걸음이었다. 당시 자동차 한 대 값에 육박했던 카폰 서비스는 개통 한 달 만에 가입자 2,000명을 돌파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모았고, 이는 1988년 국내 최초의 휴대형 이동전화 서비스 개시로 이어지며 대중화의 포석이 되었다.

선경은 단순히 국내 시장의 움직임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벌 기술 기지를 구축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1984년 미주 경영기획실(SK USA) 내에 텔레커뮤니케이션 팀을 신설해 선진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했으며, 1989년 10월에는 뉴저지 현지법인 유크로닉스를 설립하고 시카고 지역 이동통신사인 ‘US 셀룰라’ 지분 투자를 통해 실무 역량을 치밀하게 쌓아 나갔다.

이러한 준비의 결실은 1991년 4월 선경텔레콤 설립 이후 더욱 구체화되었다. 선경은 그룹 내 각 계열사 및 미주 경영기획실 핵심 인력 200여 명을 차출했다. 이들은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열정을 발휘하며 무려 20만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하고 치밀한 제2이동통신 사업 계획서를 완성해 체신부에 제출했다.

Part 2.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반납, “오해 불식하고 실력으로 인정받을 것”

1992년 8월 20일, 마침내 선경에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라는 역사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선경은 10년간 갈고 닦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심사에서 최고점인 8,388점을 획득하며 당당히 1위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사업권을 따낸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선경그룹은 전무후무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당시 붉어진 특혜 논란과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사업권을 자진 반납하기로 한 것이다. 1992년 8월 27일, 당시 대한텔레콤 손길승 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오해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권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당장의 거대한 이익보다 기업의 명예와 정당한 절차를 우선시한 대승적 차원의 용단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결과가 일주일 만에 백지화되었지만, 이는 훗날 SK가 더 큰 신뢰를 바탕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Part 3. “회사의 가치는 우리가 키워가면 된다… 우리는 미래를 산 것”

1994년 1월, 공개 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 주식 확보

1994년 1월, 공개 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 주식 확보

1994년 문민정부 출범 후 정부가 제2이동통신 사업 선정을 전경련에 위임하며 다시 찾아온 기회에서 선경은 또 한 번 정공법을 택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회장은 논란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방식에 관여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업권 경쟁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공개 입찰 인수를 통한 민영화 참여를 선언했다.

1994년 1월 25일 진행된 입찰에서 선경은 지분 23%를 낙찰받았다. 당시 주당 33만 5,000원이라는 가격은 예상가를 훨씬 뛰어넘는 파격적인 고가였으며, 총 매입금은 4,171억 2,000만 원에 달했다. 고가 인수를 우려하는 실무진에게 최종현 회장은 “지금 2,000억 원을 더 주고 사는 것은 나중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값싸게 사는 것이며, 회사 가치는 우리가 키워가면 된다”고 말하며, “우리는 미래를 산 것”이라는 역사적인 확신을 전했다.

이 결단은 1994년 7월 7일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권을 공식 획득하며 마침내 정보통신 사업 진출의 결실로 이어졌다. 민영화를 완료한 선경은 기술 자립과 서비스 혁신에 박차를 가했고, 1997년 3월 24일에는 종합정보통신기업으로의 도약 의지를 담아 현재의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오늘날 글로벌 ICT 리더로서의 기틀을 완성했다.

 

1984년부터 1994년까지의 10년은 단순히 한 기업의 성장이 아닌, 대한민국이 통신 변방에서 IT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미래 가치에 과감히 투자했던 도전의 기록이다. 1997년 탄생한 SK텔레콤이라는 이름 뒤에는 이러한 담대한 결단이 튼튼한 뿌리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로 창립 42주년을 맞은 SKT는 창립 당시의 초심을 잊지 않고, 그간 쌓아온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AI 시대를 선도하며 신뢰를 기반으로 고객의 일상을 혁신하는 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SK텔레콤 1984년~1994년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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