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톡터뷰>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에 AI가 적용됐을 때 일상의 변화에 대해 대화하는 전문가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정우철 도슨트
1845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도슨트(Docent, 전시 해설가)는 예술 작품이 어렵고 멀게 느껴지던 대중에게 이를 쉽고 친근하게 해설해 주는 이야기꾼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박물관과 미술관에 ‘AI 도슨트’가 등장하며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 도슨트는 예술 감상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을까? ‘미술관의 피리 부는 남자’, ‘도슨트 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정우철 도슨트를 만나 AI 시대 도슨트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언제든 이용 가능한 AI 도슨트… 관람객 편의성 높이는 좋은 수단
Q. 도슨트는 어떤 직업인가요?
큐레이터가 ‘전시 기획자’ 역할을 한다면, 도슨트는 최전선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더욱 쉽게 이해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전시 해설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최근 4~5년 사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직업인데요. 최근 한 전시에서 도슨트 채용 공고에 150명가량이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양성 교육 기관도 생기고 유수 대학에서 관련 과목을 개설하는 등 그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요.
Q. 최근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AI 도슨트’를 도입하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실제로 AI 도슨트 ‘큐아이’를 활용해 해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전시 해설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 관람객들로 북적거릴 수밖에 없는데요.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미술관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미술관에 도슨트가 상시 대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AI 도슨트는 언제든 이용할 수 있기에 관람객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 봅니다.
Q. AI 도슨트를 경험해 본 후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미술은 감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AI 도슨트는 ‘정보 전달’에 머물러 있어요. 정보 전달자라는 면에서는 관람객의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AI 도슨트의 전시 해설에는 감동이 부재할 수밖에 없어요. 다만,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AI 도슨트도 점점 더 진화해 나가겠지요. 실제 인간 도슨트의 말투를 적용해 친근감을 높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AI 도슨트가 어떻게 진화할지 기대되면서 그와 동시에 인간의 역할을 빼앗기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됩니다.
■ 문화예술계의 AI 도입 사례 – AI 도슨트 ‘큐아이’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뉴욕현대미술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적인 미술관들은 다수의 작품에 대해 온라인 도슨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제주항공우주박물관 등에서 AI 도슨트 ‘큐아이’가 활동하며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AI 도슨트를 통해 관람객은 작품의 배경과 의미, 작가의 의도 등 작품 전반에 대해 훨씬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졌다. 현재 큐아이는 전국 주요 문화 공간과 전시 시설 13곳에서 활동하며 연간 34만 건 이상의 문화 해설 서비스와 다국어 AI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과 AI의 공생 방법은 ‘대화와 소통’
Q. 도슨트로서 AI와 미술의 결합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미술의 가치는 단순히 뛰어난 테크닉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감정과 인생이 녹아들어야 비로소 많은 사람과 교감하고 감동을 주는 작품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AI가 만든 작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생각을 바꾸게 한 전시를 만났어요.
최근 서울 북촌에 개관한 푸투라 서울(Futura Seoul)에서 열린 전시 <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입니다. ‘기계가 자연을 꿈꿀 때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세계 최초로 자연에 특화된 오픈소스 생성형 AI 모델을 기반으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무수한 자연의 데이터를 입력하고 끊임없이 대화한 끝에 AI의 시점으로 만들어낸 자연을 보여주고 있지요. 단순히 AI가 인간 대신 그림을 그려주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생각과 마인드를 학습하고 구현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과연 이 작품을 기계가 만든 것으로 볼 것인가, 인간이 만든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습니다. 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AI가 인간의 또 다른 자아를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두려웠습니다.
Q. 앞으로 AI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아직은 AI 도슨트가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당장 앉은 자리에서도 핸드폰으로 검색 한 번이면 수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단순 정보 전달만으로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관람객이 모인 현장을 가면 매번 공기가 다르다는 걸 느끼는데요. 전시 해설을 할 때면 시시각각 변하는 관람객의 눈빛과 마주하게 됩니다. 관람객들의 다양한 반응을 살피며 제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미술에 대한 호기심을 이끄는 감성의 영역을 다룰 수 있는 건 인간만이 갖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갖고 있는 무수히 많은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진심으로 대한다면 AI와는 비견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정우철 도스트는 “언젠가 AI가 인간의 감성마저 학습할 날이 오겠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감성, 공감은 사소한 대화에서 시작되며, 인간과 AI가 공존할 방법도 ‘대화’에 있다고 밝혔다. AI가 인간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인간의 또 다른 자아로 공생 관계를 이룰 내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