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톡터뷰]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에 AI가 적용됐을 때 일상의 변화에 대해 대화하는 전문가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문유진 변호사
최근 흉악 범죄 양형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AI 판사 도입에 대한 논란이 대두됐다. AI 판사와 같이 법률 시스템에 AI를 활용하는 해외 사례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판사 출신 법조인 문유진 변호사에게 AI 판사에 대해 물었다.
“법률 시스템에 AI의 도움, 판결문 데이터 확보가 중요”
문유진 변호사
판사 시절 문유진 변호사
Q. AI 판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얼마 전에 AI 판사 관련해서 인터뷰할 때, AI가 법정에 활용된다면 판결문 검색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업무에 큰 도움을 줄 것이며, 이는 곧 판사가 ‘질 높은 판결문’을 완성하는 데 기여한다고 의견을 밝혔는데요.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진리로서의 명제를 도출하는 방법에는 귀납과 연역이 있습니다. 실제 판사가 판결을 선고할 때 유무죄 판단은 연역적 판단인 삼단논법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유죄를 정한 후 양형*은 다른 범죄의 통계적인 자료를 비교하는 귀납적 판단을 사용합니다. 이 부분에서 AI의 리서치를 통한 자료 제공이 판결문 검색 시간을 단축하고, 판사의 업무 보조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양형: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에게 형벌의 정도를 정하는 것
법률 시스템에 AI를 도입한 각국 사례
중국 – 스마트 법원 시스템
중국에서는 AI가 법률 시스템의 모든 부분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머신 러닝 기술 기반의 스마트 법원 시스템은 참고용 판례를 자동으로 검색하고, 법과 규정을 추천하며 법적 문서의 초안 작성, 평결에서 인적 오류가 인지되면 이를 변경한다. 이를 통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판사들의 업무는 1/3로 줄었고, 인민들의 노동 시간은 17억 시간 절약했다고 밝혔다.
에스토니아 – 100명의 AI 판사
에스토니아 법무부는 최대 7,000유로(약 973만 원) 이하의 분쟁에 100명의 AI 판사를 투입했다. AI가 분쟁 양측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자체 판결한 내용을 작성하면, 판사가 이를 참고해 최종 판결한다. 이를 통해 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중요한 사건에 집중할 수 있다.
대만 – 양형 정보 시스템
대만의 AI 양형 정보시스템은 다량의 재판 기록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유사 사건에 대한 양형 추세와 양형 사유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음주 운전, 사기, 절도, 상해 같은 범죄에는 ‘사실형 모델’이, 총기류, 마약 사건 등에는 ‘평가형 모델’을 적용한다. 아직 법률적 효력은 없고, 판사가 선고할 때 참고하는 정도로 활용한다.
Q. AI를 판결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판사들은 판결할 때 당시의 상황이나 인물의 감정 등을 고려합니다. 비슷한 사건이라도 판사마다 판단이 조금씩 다른 이유기도 하죠. 반면 AI 판사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판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관된 판결로 ‘양형 기준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상해나 살인, 강간과 같은 분야는 서로 아는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사건마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특수한 관계나 상황을 고려해 판결하니, AI가 이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반해 교통사고는 교통사고의 상황, 사고라는 객관적 요소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AI를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음주 운전의 경우에는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가 중요하니 AI가 양형을 적절하게 내릴 수 있습니다.
Q. AI의 판결문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AI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들도 각자의 성향이 반영되는 판결로 비판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AI도 마찬가지로 AI 특성이 반영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완벽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AI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기존 판결문의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하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죠. 그렇게 되면 비슷한 범죄인데 양형이 두세 배 차이 나는 고무줄 판결도 점점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AI가 판사의 모든 영역을 대체할 수는 없어…”
문유진 변호사
Q. AI 판사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을 것 같습니다.
AI가 법률의 복잡성과 인간의 판단력을 과소평가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실제로 AI가 인간을 벌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죠. 이 문제는 여전히 찬반 논란이 있기 때문에, 확정해서 답하긴 어렵습니다. 저는 판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판결문을 작성할 때 법철학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법의 본질과 개념에 대해 되새기면 핵심을 놓치지 않고 판결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AI 판사에 대한 논란도 법철학적인 문제로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우리나라에도 AI 판사가 도입될까요?
현재 로스쿨 도입 후 법원 내에 로클럭(Law Clerk), 즉 재판연구원이 생기면서 판사들은 판결문을 작성할 때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건의 개요를 요약해주고,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며 판결 초고 및 최종 의견서를 제출하는 업무를 하는데요. AI가 도입되면 재판연구원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할 거라고 봅니다. 대법원에서 빅데이터 기반의 소송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개인적으로도 시기적인 문제일 뿐 AI는 도입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AI가 판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AI가 판사의 모든 영역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의 경우, 사고 자체의 객관적 발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피해자가 어린 학생이거나 임신부라면 개개인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성폭행당한 의붓딸이 계부를 살해한 경우에는 정당방위 여지는 없는지, 양형에 있어 감형의 여지가 있는지 등을 검토합니다. 이런 사례들은 판사들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영역에 어느 정도 의존해서 판결하게 되는데요. 아직 AI는 특수한 상황이나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양형 기준 없이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했지만, 이제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양형 기준표에 따라 판결하고 있습니다. AI에 세부적인 요소를 전부 입력해 놓는다면, 언젠가는 AI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판사들도 판결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AI. 문유진 변호사의 인터뷰를 통해 AI가 법률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AI 판사에 대한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