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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칼럼] 엑스포가 몰고 온 놀라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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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T 뉴스룸은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를 기원하며 엑스포의 역사부터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활동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필자의 견해는 SK텔레콤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엑스포가 개최 도시에 미치는 영향은 넓고도 깊다. 불멸의 랜드마크를 유산으로 남기고 도시 개발·개조·재생 전반에 심대한 파급력을 발휘한다. 엑스포를 계기로 도시계획 축을 재정립하고 도로·철도·통신 등 기반 시설을 업그레이드한다. 낙후지역에 박람회장을 조성해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개최 도시가 얻는 세계적 인지도는 보너스라 할 수 있다.

당대 거장 건축가들이 참여해 창의력을 쏟아부은 박람회장은 근현대 도시건축의 실험장이 돼왔다. 엑스포 전시관은 항구적으로 보존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한시적 건축물이다. 그런 만큼 더욱 실험적 조형이 탄생했고, 혁신 디자인으로 가득 찬 박람회장은 그 성과를 개최 도시와 공유했다. 엑스포 건축물이 하나의 전형이 돼 도시건축에 확산됐다.

171년 세계박람회 역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은 에펠탑이다. 너무 유명해져 탄생 배경이 희미해졌지만, 에펠탑은 1889년 파리박람회 출입구 겸 기념물로 세워진 건축물임이 틀림없다. 건설 당시엔 수려한 파리 경관을 해치는 ‘흉물’이 될 것이란 비판과 반대가 빗발쳤다. 그러나 막상 세워진 뒤엔 가치가 날로 높아졌다.

엑스포 최고의 유산,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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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파리박람회 출입구 겸 상징탑으로 에펠탑이 세워진 샹드마르스 박람회장(사진 출처: 국제박람회기구(BIE) 홈페이지. www.bie-paris.org)

세계 최고 높이인 302.6m 탑에 올라 파리를 조망하려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에펠 회사는 1년도 안 돼 입장료 수입만으로 투자비용을 다 뽑을 정도였다. 에펠탑은 애초 1910년 해체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물이 되면서 영구 보존 결정이 내려졌다. 에펠탑은 그렇게 서구문화의 아이콘이자 엑스포 역사상 최고의 유산이 됐다.

엑스포는 에펠탑 외에도 많은 랜드마크를 남겼다. 주요 기념물로 바르셀로나 콜럼버스 탑과 개선문(1888년), 밀라노 석조 수족관(1906년), 뉴욕 유니스피어(1939년), 브뤼셀 아토미움(1958년) 시애틀 스페이스 니들(1962년) 오사카 태양의 탑(1970년), 상하이 동방의 관(2010년) 등을 꼽을 수 있다.

2030년 부산엑스포가 열리면 어떤 기념물을 남기게 될까. 현재 검토안은 북항 2, 3부두 터에 건설 중인 오페라하우스 옆 이벤트 문화마당에 상징 조형물을 조성하는 것으로 돼 있다. 5부두 곡물저장 사일로 콤플렉스는 전망탑 겸 대규모 문화 플랫폼으로 재생된다. 이와 별도로 180m 높이 전망 휠 건립도 거론되고 있다.

파리는 세계박람회를 통해 기반 시설을 갖춘 대표적인 도시다. 파리는 1855년부터 1900년까지 11~12년 간격으로 다섯 차례 박람회를 개최했다. 20세기 들어 1937년 한 번 더 열어 엑스포 최다 개최 기록을 세웠다. 첫 박람회 준비 당시 파리는 1851년 세계박람회 첫 테이프를 끊은 런던에 비해 도시환경이 크게 뒤져 있었다.

나폴레옹 3세는 박람회 준비와 함께 ‘파리 대개조’ 사업에 착수했다. 파리시장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에게 도시 구조개혁 총책을 맡겨 중세도시 형태이던 파리의 도로와 건축물, 상하수도, 녹지 등을 획기적으로 변모시켰다. 파리 도로의 근간인 개선문을 중심으로 한 12개 방사형 도로, 도심-외곽 연결 대로가 이때 개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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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파리 개선문과 에투알 광장 모습

좁은 미로 같은 골목,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는 밀집 건물, 비만 오면 진창이 되는 도로, 생활하수가 넘치는 수로 등 악명 높던 도시환경을 전면 재개발했다. 1900년 박람회에 맞춰 지하철이 개통됐다. 샹드마르스 박람회장은 센 강변을 따라 확장되면서 세계적 관광명소가 됐다. 에펠탑을 정점으로 빼어난 경관을 완성한 파리는 유럽의 보석으로 거듭났다.

낙후지역 개발 vs. 도심 재생

19세기 세계박람회를 개최한 빈, 브뤼셀, 바르셀로나 등 유럽 도시들도 박람회를 계기로 도시의 면모를 일신했다. 호주 멜버른은 영국 식민지였던 1880년 박람회를 개최해 변방 마을 같던 도시를 현대 도시로 변모시켰다. 당시 박람회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빅토리아 칼튼 공원과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미국 시카고는 1893년 박람회장을 고딕 양식의 회벽과 대리석 건물로 조성했다. 흰색이 주류를 이뤄 ‘화이트 시티’라 불렸다. 이 양식은 이상적 도시로 평가돼 향후 미국 도시건축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특히 수도 워싱턴DC 심장부인 내셔널 몰과 대통령 관저 백악관 건축의 전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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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시티’라 불린 1893년 시카고 박람회장 중앙부 콜로네이드

현대 엑스포의 박람회장 조성은 크게 양분된다. 도시 외곽 낙후지역이나 유휴지를 개발하는 방식과 기존 도심부를 재생·재개발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몬트리올(1967년), 오사카(1970년), 상하이(2010년), 밀라노(2015년), 두바이(2020년), 오사카·간사이(2025년) 등이 전자라면 시애틀(1962년), 밴쿠버(1986년), 리스본(1998년) 등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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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앞바다 인공섬에 조성되는 2025년 오사카·간사이 박람회장 조감도(사진 출처: 국제박람회기구(BIE) 홈페이지. www.bie-paris.org)

어느 경우든 엑스포를 도시 재개발·개조의 결정적 동력으로 활용한 것은 마찬가지다. 1962년 시애틀박람회는 시설 대부분을 항구 건축물로 지어 지금껏 사용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는 1986년 엑스포를 계기로 평범한 항구도시에서 국제도시로 깜짝 변신했다. 대대적인 다운타운 재개발과 함께 대중교통의 근간이 된 무인 경전철 스카이트레인이 개설됐다.

2015년 밀라노엑스포는 교외의 낙후 공단지역을 재활용했다. 엑스포 이후 대학과 기업 등이 들어선 휴먼 테크노폴리스 과학기술파크로 개조해 2024년 문을 열 예정이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2010년 상하이엑스포는 황푸강 양안 낙후지역 523만㎡를 첨단 시가지로 탈바꿈시켰다.

도시기반 시설 확충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특히 지하철 199㎞를 증설해 상하이는 세계 최장 지하철 네트워크(803㎞) 타이틀을 갖게 됐다. 박람회장은 중국관 등 영구 보존용 건축물과 함께 세계 유일의 국제박람회기구(BIE) 공인 세계엑스포박물관이 들어서 도시의 자산이 되고 있다.

2030년 엑스포 추진 중인 부산은 박람회장 조성을 대규모 개발사업인 북항 재개발과 연계시키고 있다. 도심권 항만부지를 전면 개조하는 프로젝트에 엑스포란 강력한 추진동력을 얹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전략이다. 부산항 개항 이래 가장 큰 변모로 후손에게 물려줄 도시의 미래상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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