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톡터뷰>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에 AI가 적용됐을 때 일상의 변화에 대해 대화하는 전문가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사건 현장은 언제나 다양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추적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아닐까? 국내 최고의 법 영상 분석 전문가로 꼽히는 황민구 법영상분석연구소장을 만나 AI와 법 영상 분석 기술의 진화에 대해 들어봤다.
증거를 증거답게 만드는 ‘법 영상 분석’, AI와 만나다
Q. 법 영상 분석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사건 현장에는 범인의 DNA, 지문, 족적, 혈흔 등 여러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1순위는 CCTV와 블랙박스에 남은 영상이죠. 법 영상 분석가는 영상 자료를 분석해 ‘증거를 증거답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흔히들 영상 자체만으로 증거의 효용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용의자가 영상 속 인물이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면 안면 인식 기술로 얼굴을 식별해야 하고, 편집이나 조작이 의심된다면 감식을 통해 위·변조를 판별해야 합니다. 또 화면이 흐릿해 차량 번호 등 중요한 정보가 보이지 않을 경우 화질 개선이 필요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대상으로 피 검사와 X-Ray, CT를 촬영해 질병의 근원을 찾듯, 법 영상 분석가는 영상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파악한 후 해결함으로써 숨어 있던 단서를 찾는 일을 합니다.
Q. 영상 분석 기술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는 언제부터 인가요?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발달하고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영상 분석 기술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 영상 매체가 확산하면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영상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영상 분석 기술이 중요해지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분석이 힘들었던 사진과 영상 증거를 지금의 기술로 재분석해 용의자를 특정함으로써 미제 사건을 해결한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전문 보행 분석 시스템으로 영상 속 인물의 걸음걸이 패턴을 분석하거나 족적만으로도 정확한 발 사이즈를 계측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어요.
Q. 영상 분석 기술이 활용되는 분야는?
범죄자를 특정하는 데만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항공 사진 판독을 통한 토지 분쟁 조정이나 이혼 소송 시 배우자 귀책 사유 입증에도 활용되고 있고요.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사고의 원인 규명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영상 분석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함도 있지만, 추후 비슷한 상황에서의 사고 발생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영상 분석 기술이 사회 전반에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죠.
영상 분석 기술과 AI가 접목된 3차원 복원 기법과 3D 얼굴 복원 기술
Q. AI와 만난 영상 분석 기술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요?
전 세계 AI 영상 분석 시장 규모가 오는 2028년 약 99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영상 화질 개선, 딥페이크 등 위·변조 영상 판독, 안면 인식 등 다양한 영상 분석 기술에 AI가 활용되면서 영상 분석 분야도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영상 분석 과정에서 일일이 물리적인 데이터를 산출하거나 직접 좌표를 찍어 계측하는 등 시간과 인력 소모가 컸습니다. 이제는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학습한 인공지능을 통해 그 과정을 단축할 수 있게 됐습니다. 등장한 지 5년 정도 된 AI 영상 분석 기술은 이제 안면 인식과 동공 인식을 통한 핸드폰 보안 등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이미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Q. 최근 딥페이크 등 가짜 영상과 관련한 범죄가 확산하면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부정적인 변화도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 딥페이크 자체는 나쁜 기술이 아닙니다. AR, VR 등의 기술과 결합한 딥페이크는 가상현실에서 세상을 떠난 가족을 만나거나, 기업 광고에 버추얼 휴먼이 등장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며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다만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결과 각종 범죄로 진화하게 된 것입니다.
기술은 죄가 없습니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자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으로 인한 범죄를 다시 인공지능으로 막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악용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이를 바로잡기 위한 기술도 같이 발전할 것이라고 봅니다. 끊임없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지요.
Q. AI 영상 분석 기술의 진화와 함께 법 영상 분석가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법 영상 분석 분야에도 점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쉽고 빠르게 영상을 분석할 수 있는 노하우가 쌓일 겁니다. 하지만 AI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도구 역할을 할 뿐, 여전히 주인공은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류 없는 과학은 없습니다. DNA를 판별할 때도 100%로 표기하지 않고 0.1%의 불확실성을 남겨두는 것처럼, 기술을 100%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기술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뢰를 더하는 것이 바로 인간, 법 영상 분석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사익을 위해 영상을 조작하거나, 진실보다는 의뢰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감정서를 조작하는 등 법 영상 분석을 신종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사기꾼도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제 모든 분석이 정답일 수만은 없겠지요. 하지만 최소한 제 분석을 통해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기술을 이용해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큰돈에 흔들리기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술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진실을 진실이라 말할 수 있는 신념이야 말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황민구 소장은 “AI 기술과 법 영상 분석의 만남은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고 정의롭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의 눈과 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실을 쫓는 기술,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 AI와 인간이 만들어갈 법 영상 분석의 내일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