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모델의 성능을 좌우하는 데이터의 확보와 활용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공개 데이터의 한계가 부각되면서, 데이터의 양뿐 아니라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고 활용할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데이터 벽(Data Wall)이 AI 산업에 미치는 영향,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SKT AI정책연구원 김우영 연구원과 함께 살펴봤다.
“학습할 데이터가 곧 떨어진다.” 지난 1~2년 사이 이 문장은 AI 업계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경고가 됐다. 다만 이 말은 종종 하나의 위기처럼 뭉뚱그려진다. 실제로 지금 벌어지는 일은 성격이 전혀 다른 세 개의 제약이 같은 시기에 겹친 것이다. 바로 물량, 접근, 그리고 품질이다. 어떤 벽에 부딪히고 있는지부터 구분해야 그에 맞는 대응이 가능하다.

첫 번째 벽 — 쓸 수 있는 텍스트의 총량
미국 AI 연구 기관 에포크AI(Epoch AI)는 인간이 작성한 고품질 공개 텍스트 데이터의 총량을 약 300조 토큰으로 추정한다. 현재의 확장 추세를 연장하면 이 재고는 2026년에서 2032년 사이에 소진될 수 있다. 다만 소진 시점은 학습 방식과 데이터 활용 효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주목할 점은 “언제 고갈되는가”보다 “한계효용이 언제 꺾이는가”다. 데이터의 양을 계속 늘리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성능 개선에는 점차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같은 데이터에서 얼마나 높은 학습 효율을 끌어내느냐가 된다.
두 번째 벽 — 웹 접근의 변화
물량의 벽이 수년 단위의 이야기라면, 접근의 벽은 이미 현실의 규칙을 바꾸고 있다.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는 2026년 9월 15일부터 광고가 게재된 페이지에서 AI 학습·에이전트용 크롤러를 기본 차단하고, 검색과 학습을 함께 수행하는 겸용(mixed-use) 크롤러도 더 엄격하게 관리하는 정책을 적용한다.
이는 웹 콘텐츠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인프라 사업자가 AI 크롤링에 대한 통제와 과금 체계를 강화하면서, AI 기업 역시 어떤 데이터를 어떤 목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 접근 권한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데이터가 존재하는 것과 데이터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세 번째 벽 — 합성 데이터의 한계
물량이 부족하면 데이터를 직접 만들어 쓰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네이처(Nature)에 실린 연구는 모델이 생성한 데이터로 후속 모델을 학습할 경우 세대를 거치며 성능이 퇴화하는 ‘모델 붕괴(model collapse)’ 현상을 보고했다. 특히 희귀 사례와 예외적 패턴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합성 데이터는 모든 영역에서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대체하는 만능 해법이 되기 어렵다.
수학이나 코딩처럼 결과를 검증하기 쉬운 영역에서는 합성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이 크지만, 희귀 사례와 예외적 패턴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기존 데이터와 함께 활용하는 보완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세 개의 벽은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어떤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데이터가 실제로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데이터의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세 가지 제약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인간이 직접 만들었고, 아직 충분히 학습되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새롭게 생성되는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 시장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다. 오픈AI는 독일 대형 미디어 그룹 악셀 슈프링어(Axel Springer), 글로벌 미디어 그룹 뉴스코프(News Corp) 등 콘텐츠 기업과 뉴스 콘텐츠를 AI 모델 학습에 활용하거나 AI 답변에서 관련 콘텐츠를 제공·인용할 수 있도록 콘텐츠 이용 및 접근 권한을 확보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 레딧 역시 실시간 데이터 API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AI 기업의 데이터 접근 경로를 확대했다. 과거 콘텐츠를 한 번 구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시간 접근과 출처 표기를 포함한 지속적인 라이선싱 모델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데이터가 한 번 판매되고 끝나는 자산에서, 지속적으로 접근하고 활용하는 서비스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대다수 기업에게 위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의 위치에 따라 협상력과 경쟁력이 달라지는 과정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데이터 생태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모델 개발 기업은 데이터의 물량과 품질을 확보하는 동시에, 웹 접근 방식의 변화와 새로운 스케일링 방식에 대응해야 한다. 오픈AI는 학습용(GPTBot), 검색용(OAI-SearchBot), 사용자 요청 대행(ChatGPT-User) 크롤러를 나눠, 퍼블리셔가 용도별로 허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라이선스 확보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어떤 콘텐츠 기업과 계약을 맺었느냐가 AI 서비스에서 활용하거나 인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를 직접 결정하기 시작했다.
스케일링 축의 전환도 나타나고 있다. 사전 학습 물량 경쟁에서 사후 학습과 추론 시점 연산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수학·코딩처럼 정답을 검증할 수 있는 영역에 합성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이다.
데이터·콘텐츠 보유 기업의 과제는 다르다. 지금까지 데이터가 단순히 콘텐츠를 저장하고 유통하는 자산이었다면, 앞으로는 누가 어떤 데이터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통제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크롤러 접근을 용도별로 구분하고, 라이선싱이나 과금 체계를 통해 데이터 접근을 수익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대다수 기업의 진짜 과제
반면 AI를 도입해 쓰는 대부분의 기업에 데이터 벽(Data Wall)*이 던지는 질문은 다르다. 범용 모델이 공개 웹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줄어들수록 기업 내부에만 존재하는 데이터의 상대적 가치는 높아진다. 거래·운영 로그, 고객 상담 기록, 설계와 정비 이력, 현장 계측치, 전문가의 판단 기록 등이 대표적이다.
* 인공지능 학습에 필요한 공개 데이터가 고갈되어 성능 향상이 한계에 부딪히는 현상
그러나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가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거나 정제되지 않았고, 라벨이 없거나 이용 권한과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면 AI에 바로 활용하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쌓았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내고 정제해 자산화하고 실제 업무와 서비스에 연결할 수 있느냐이다.
따라서 AI 도입 기업은 먼저 AI로 해결하려는 과제와 활용 목적, 기대효과를 정의해야 한다. 이후 필요한 데이터가 어디에 있고 어떤 조건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고객 동의 범위와 계약상 이용 조건 등 권리관계에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적용 역시 처음부터 데이터를 모델 학습에 사용하는 방식보다, 데이터를 옮기지 않고 참조하는 RAG 방식에서 시작해 효과가 확인된 영역에 사후 학습을 확대하는 순서가 현실적이다.
세 위치에 동시에 선 SKT의 대응
SKT는 Data Wall이라는 변화에 모델·데이터·인프라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대응하고 있다. 같은 벽도 어느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다른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먼저 ‘모델 개발자’로서의 과제는 한국어라는 조건에서 출발한다. 공개 웹에서 한국어 텍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영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다. 전체 데이터의 양이 충분하더라도, 한국어에 특화된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하고 정제하는 문제는 별도로 남는다. A.X(에이닷엑스) 개발 과정에서도 데이터의 양뿐 아니라 데이터의 품질과 학습 방법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고품질 한국어 데이터를 발굴하고 정제하는 역량은 모델 성능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한국어와 국내 산업 환경에 최적화된 소버린 AI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데이터 보유자’로서도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양보다 활용 가능성이다. SKT는 통신과 AI 서비스를 운영하며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지만, 고객 데이터의 활용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비식별화, 이용 목적 및 권리관계 등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전제된다. 데이터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책임 있게 활용해 실제 가치로 전환하느냐에서 결정된다.
마지막은 인프라다. AI의 스케일링 축이 사전 학습 데이터의 양을 늘리는 방식에서 사후 학습과 추론 시점 연산으로 다변화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연산 인프라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대다수 기업의 과제가 자사 데이터 정비와 RAG라면, 이를 보안이 전제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연산 기반도 필요하다. SKT가 2029년까지 5GW 규모를 목표로 추진하는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GPUaaS 사업은 이러한 AI 인프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축이다.
Data Wall 이후의 경쟁이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경쟁’에서 ‘가진 데이터를 쓸 수 있게 만드는 경쟁’으로 이동한다면, 그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 역시 중요한 사업 기회가 된다.
벽 앞에서 필요한 건 순서다
Data Wall 담론에는 프런티어 개발사의 문제를 모든 기업의 문제로 확대해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은 공개 데이터 고갈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지 않으며, 당장 필요한 것은 데이터 수집량을 늘리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AI를 만들고 사용할 것인지 먼저 정하고, 거기서 역산해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다.
데이터 거버넌스를 정비하고, 활용 가능한 데이터와 그렇지 않은 데이터를 구분하며, 필요한 데이터를 안전하게 AI와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Data Wall 이후 기업에 필요한 대응의 출발점이다.
벽은 모두에게 같은 높이로 서 있지 않다. 자신이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데서부터, 대응의 순서는 정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