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삼월, SKT 사옥에 ‘아트 갤러리’가 들어섰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를 돕기 위해 ‘특별 전시 공간’이 마련된 것이죠. SKT 사옥을 화사하게 장식한 첫 번째 주인공은 양시영 작가입니다. 발달장애 예술가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디스에이블드(THISABLED)’ 소속 작가인데요. 소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양시영 작가 또한 발달장애 예술가입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예술인으로 성장한 양시영 작가. 어떤 작품을 그리고, SKT와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을까요? 봄기운 가득한 SK T타워에서 그를 만나보고 왔습니다.
해맑은 작품을 보여주는 청년 미술가
양시영 작가는 스물두 살의 청년 미술가입니다. 발달장애 2급으로, 언어로 나타내지 못하는 감정을 섬세한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주로 자신의 경험을 화선지 위에 담는데요. 동양화, 서양화, 정물, 풍경 등 경계에 갇히지 않은 소재를 화선지와 동양화 물감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만의 특징입니다.
작품은 T타워 미디어 월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선 ‘생각하는 개구리’, ‘빛 속의 개나리’ 등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한 작품이 전시 중이었죠. 일상의 소재들이 독특하게 재해석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때 묻지 않은 작가의 시선과 동양화 물감의 투명함은 ‘참 맑다’라는 느낌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맑은 그림을 그리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던 찰나, 양시영 작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예상만큼이나 순수한 모습의 그였습니다.
그림이 곧 작가의 언어
인터뷰에는 어머니 강정자 님과 디스에이블드 김현일 대표가 함께했습니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양시영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슬며시 들어가 봤습니다.
▲ 어머님 강정자 님(왼쪽), 양시영 작가(가운데), 김현일 디스에이블드 대표(오른쪽)
SKT Insight : 맑은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양시영 작가님은 언제부터 이런 그림을 그렸나요?
강정자 님 : 시영이는 어렸을 때부터 오티즘(자폐 장애) 증상을 보였어요. 어느 날부터는 시영이가 엘리베이터에 관심을 두더라고요. 유심히 관찰하고는 가로, 세로로 선을 긋기 시작했어요. 이유는 몰랐지만, 아이가 하는 대로 놔두었습니다.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 눈높이를 맞추는 것. 그게 곧 치료이기도 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선은 형태가 되었고, 그림으로 발전했는데요. 그때 알았죠. ‘시영이는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말을 하는 아이구나’라고 말이죠. 그러고 보니 다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려 왔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사이 선이 형태가 되었고 지금의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SKT Insight :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강정자 님 : 작가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아이가 좋아하니까, 그림을 그리게 해주고 싶었죠. 시영이에게 동양화 물감을 알려준 건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에요. 이때부터 동양화 물감으로 차곡차곡 작품을 그렸어요. 그러자 시영이 그림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거예요. 갤러리를 운영하는 학부모님 덕에 전시도 진행했고요. 학교 축제 때도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사실 이 시기까진 시영이 그림에 대한 확신은 없었어요. 선생님 도움으로 그림이 잘 나온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SKT Insight : 그렇다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은 언제 들었나요?
강정자 님 : 인도 여행을 다녀온 이후죠. ‘시영이가 혼자서도 그림을 잘 그릴까?’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미술 재료를 챙겨서 떠났습니다. 그런데 척척 잘 그리는 거예요. 이때 알았어요. 아들이 정말 혼자서 해내고 있었구나. 그제야 확신이 들었습니다.
물론 정규 교육을 받은 작가들과 비교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시영이를 응원하는 이유가 있어요.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보여줄 수 있는 용기. 그런 용기를 갖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다행히 세상이 시영이를 예쁘게 봐주는 것 같아요. 덕분에 작품은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통로가 됐습니다.
SKT Insight : 작가님은 주로 어떤 걸 그리는지 궁금합니다.
강정자 님 : 시영이는 자기 삶을 그려요. 신나게 놀고 오면 그 기억을 일기 쓰듯 그립니다. 그리는 것이 이 아이의 언어이니까요. 시영이의 시각은 매우 발달해 있는데요. 매일 만 보 이상 산책하며,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것을 봅니다. 싹이 튼 정원이라든지 바뀐 보도블록이라든지, 본능적으로 발견하고 그림으로 옮기죠.
SKT Insight : 작가님 생각도 궁금해지는데요. 작가님은 어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즐겁나요?
양시영 작가님 : 산책하고, 운동하고, 이런 거 좋아요. 세희랑 놀고 데이트하는 게 즐거워요.
강정자 님 : 세희는 시영이 여자친구예요. 아마도 세희랑 놀고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즐겁다는 말 같습니다.
SKT 사옥에 깃든 ESG의 가치
양시영 작가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는 주변의 도움도 컸습니다. 큰 힘이 되어준 존재가 있다면 단연 소속사입니다. 디스에이블드는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세상에 나오도록 물심양면 돕고 있는데요. SKT와의 프로젝트도 그런 도움의 일환이었습니다.
SKT Insight : 양 작가님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김현일 대표님 : 어머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저희 에이전시에는 검토 대기 중인 예술가분이 많은데요. 작가님 작품을 보자마자, 우선순위로 섭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만큼 작품이 좋았습니다.
SKT Insight : SKT와는 어떻게 협력하게 되었나요?
김현일 대표님 : 저희는 39명의 발달장애 예술가와 함께하는 에이전시입니다. 4천여 작품을 리디자인해 액세서리, 컬래버레이션 제품 등을 만들고 있죠. 작품 렌탈과 전시도 진행합니다.
이번 미디어 아트 전시는 SKT에서 먼저 제안했습니다. ‘발달장애 예술가와 세상을 잇는 좋은 접점’이라고 생각하여 흔쾌히 협력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19 탓에 제대로 된 전시회를 열 수 없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제작해 주고, 전시 공간을 마련해 준 SKT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세상과 접촉할 기회를 늘려준 점도 감사히 생각합니다.
SKT Insight : 전시는 언제까지 하나요?
김현일 대표님 : SKT는 매월 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으로부터 작가를 추천받고 미디어 아트 형태로 작품을 전시한다고 합니다. 양시영 작가님의 전시는 3월 한 달간 이어질 예정인데요. 작품 16점이 미디어 아트로 전시됩니다. 사옥 외벽과 내부 미디어 월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SKT Insight : 또 다른 협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현일 대표님 : V 컬러링입니다. 양시영 작가님의 작품은 3월 말부터 V 컬러링 콘텐츠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수익금은 양 작가님에게 전액 지원됩니다.
V 컬러링 콘텐츠는 작가님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홍보의 기회로 생각하는데요. 아울러 수익금 전액이 지원되는 프로세스는 발달장애 예술가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SKT Insight : 미디어 아트는 작가님에게도 신기하게 다가갈 듯해요. 작품을 보니 어떤가요?
양시영 작가님 : 기분이 좋아요! 하늘만큼 좋아요!
양시영 작가가 해맑게 답하자, 현장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이날 인터뷰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무리되었는데요.
이곳 SK T타워, 대전 둔산 SKT 사옥에 방문하면, 양시영 작가의 미소처럼 맑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전시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죠.* 관람료는 따로 없습니다. 작가를 향한 따뜻한 응원, 그 마음만 품고 방문하면 됩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방문객 입장이 제한될 수 있음. 입장 제한 시 사옥 외벽 미디어 월에서 감상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