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한 CDMA 대규모 상용화가 ‘IEEE 마일스톤(Milestone)1884년 토머스 에디슨과 그레이엄 벨 주도로 창설된 전기·전자공학분야 세계 최대 학회로, 1983년부터 인류 사회와 산업 발전에 공헌한 역사적 업적에 시상하는 프로그램’에 등재됐다. ‘글로벌 ICT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IEEE 마일스톤은 여태껏 벤자민 프랭클린의 전기 연구(1751년), 볼타의 전기 배터리 발명(1799년), 마르코니의 무선 전신 실험(1895년), 최초의 무선 라디오 방송(1906년), 최초의 텔레비전 공개 시연(1926년), 최초의 반도체 집적회로(1958년) 등 역사에 족적을 남긴 과학기술들이 선정되어왔다. 또한, 북미·유럽·일본과 같은 기술강국이 업적의 대부분인 90% 이상을 차지해 왔으나, 이번 CDMA 사례를 통해 SKT가 국내 기업 최초로 IEEE 마일스톤에 선정된 것이다. 세계 ICT 산업 성장에 기폭제 역할을 한 CDMA 상용화 과정을 SK텔레콤 뉴스룸에서 살펴본다.
CDMA 상용화의 시작
1992년 12월 정부는 CDMA 기술을 이동통신 단일 표준화 기술로 발표, CDMA 기술 개발을 가속했다. 그로부터 1년 후, 1993년 12월, 정부는 CDMA 시스템 개발 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부합하는 개발품을 채택하겠다는 의미의 ‘사용자 요구사항’을 개발업체에 통보했다. 한국이동통신과 납품업체들과의 관계가 명확해지고, 개발에 탄력이 붙었다.
1994년 1월, 한국이동통신이 민영화되어 SKT가 최대 주주가 되면서 CDMA 시스템 개발은 더 가속화됐다. 당시 선경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동통신 기술 개발 사업관리단은 1994년 3월, 개발업체에 상용시험계획서를 발송하고,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예비시험을 통과하여 상용시험기를 가동했다. 시험을 거듭한 결과,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1월 18일, 세계 최초로 CDMA 방식 시스템 운용 시험에 성공했다. 이어서 12월에는 집중운용보전센터에 3대의 교환기를 설치하고 CDMA 상용시험에 착수했다.
CDMA 기술의 새로운 과제
CDMA 시스템 개발 이후에는 기존 아날로그 망에 연동하는 숙제가 남아있었다. 아날로그 주파수 대역에서 CDMA 시스템의 운용 주파수를 뽑아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뿐만 아니라, 상용화 성공을 위해서는 교환기, 단말기 개발, 기지국 최적화 등의 과제도 남아 있었다. 한국이동통신은 기지국을 적재적소에 세우며, 가장 효율적으로 설치하고 조정하는 최적화 작업을 실시했다.
CDMA 기술을 증명한 시험통화
같은 시기, PCS(개인휴대통신) 기술 표준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렸다. PCS 기술 표준 후보에는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이 추진하고 있는 CDMA와 한국통신의 TDMA(시분할다중접속방식)가 있었다. 1995년 6월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95 정보통신 전시관 행사’에서 CDMA 이동전화 시연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서정욱 회장은 기자들과 셔틀버스 안에서 CDMA 시스템으로 미리 통화를 나누며, CDMA의 기술을 입증했다. 시험통화는 CDMA 국산 상용화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으며, 시연회는 대성공이었다.
시연회 이후, 한국이동통신은 CDMA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또한, 국내에서 이미 CDMA 기술을 확보한 상황에서 외국으로부터 TDMA 기술을 도입해 완전히 새로 개발해야 하는 부담에 대해 지적했다. 한국이동통신의 설득 작업으로 1995년 10월 20일, 정보통신부는 ‘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량 2차 시안’을 발표하고, PCS 무선 접속 방식을 CDMA 방식으로 단일화하기로 결론지었다.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에 성공
1995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임직원들은 서울, 인천, 부천 등지의 거리를 오가며 CDMA 상용화를 철저하게 준비했다. CDMA 상용화 하루 전인 1995년 12월 31일, 손길승 부회장과 서정욱 회장 등이 최종 시험통화를 실시했다. 통화는 단 한 차례도 끊기지 않았다. 성공적인 시험통화 이후, 새해 연휴가 지난 1996년 1월 3일, CDMA 서비스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기술 주도국으로 비상!
1996년 4월 12일, 서울 등 수도권 지역으로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가 확대되고, 상용화 9개월 만에는 전국 주요 도시로 확대됐다. 서비스 대상은 약 3,502만 5,000명으로, 당시 한국 전체 인구의 79%에 달했다.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기술은 한국 IT산업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국민 경제 향상과 정보통신기술 주도국으로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또한, CDMA 상용화 기술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이동전화 단말기 수출국으로 거듭났다. 가입자 수 증가는 국내 이동통신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든든한 내수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근간이 되었고, 단말기 수출은 단일 품목 중 반도체와 자동차에 이어 세 번째를 기록했다. CDMA 세계 최초 상용화는 기술 종속국을 탈피해 기술 주도국으로 비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IEEE 마일스톤 기념, ‘모두를 위한 혁신(Innovation for Everyone)’ 전시
을지로 T타워 1층에서 전시되는 IEEE 마일스톤 등재 기념 전시 ‘모두를 위한 혁신(Innovation for Everyone)’
을지로 T타워 1층에서 전시되는 IEEE 마일스톤 등재 기념 전시 ‘모두를 위한 혁신(Innovation for Everyone)’
을지로 T타워 1층에서 전시되는 IEEE 마일스톤 등재 기념 전시 ‘모두를 위한 혁신(Innovation for Everyone)’
한편, SKT는 6월 10일부터 21일까지 2주간 T타워 1층에서 IEEE 마일스톤 등재 기념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 테마는 ‘모두를 위한 혁신(Innovation for Everyone)’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이동통신, 세계 최초의 CDMA, LTE-A, 5G, AI 기술까지 대한민국을 넘어 모두에게 편리함을 제공한 SKT의 역사와 비전을 담아낸다.
SKT는 정부와 기업이 한마음으로 이뤄낸 CDMA 상용화의 협력을 되새기며, 온고지신의 자세로 AI시대를 개척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