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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와 무엇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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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업무 전반에 활용되면서 사람과 AI가 일을 나누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이제는 AI에게 어떤 일을 맡기고, 사람은 무엇을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이중학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의 칼럼을 통해 AI가 가져온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사람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살펴보고, 이러한 관점에서 SKT 정재헌 CEO가 제시한 ‘AX의 J커브’가 갖는 의미를 소개한다.

“10년 전 ‘AI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오늘 우리는 ‘AI와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묻고 있다.”

지난 9월 1일 SKT-서울대 AI 공동과정 특강에서 정재헌 SKT CEO가 강연을 마치며 남긴 말이다. 필자는 이 문장이 지금 일터의 변화를 짧지만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AI와 사람을 마주 세워 누가 더 잘하는지 견주던 질문이, 둘이 나란히 서서 무엇을 함께 만들지 묻는 질문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바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어떻게 이뤄져 있는가?’를 세밀하게 살피는 것이다. 함께 만든다는 것은 일을 나눈다는 뜻이고, 일을 나누려면 일이 어떤 단계를 거쳐 흘러가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갈리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어떤 역량이 새로 요구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내 일을 ‘흐름’으로 다시 보기

AI의 역할이 커지면서 업무 분담의 단위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을 나눴고 AI는 각자 손에 쥔 도구였다. 이제는 하나의 일 안에서 어떤 단계는 AI가, 어떤 단계는 사람이 맡는다. SKT가 지난 6월 ‘AX 혁신 2.0’을 발표하며 AI 에이전트에 사번과 소속, 직무, 권한을 부여하고, 기존 업무를 백지에서 AI 기반으로 다시 설계하는 ‘AX 샌드박스’를 도입한 것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

여기서 성과를 가르는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쓰느냐’보다 일을 ‘얼마나 다시 짜느냐’이다. 맥킨지가 2026년 8월 발표한 「The state of AI in 2026」에 따르면, 영업이익(EBIT)의 5% 이상을 AI에서 얻는 고성과 기업 소속 응답자 중 약 75%가 업무 흐름(workflow)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했다고 답했다. 기존 업무에 AI를 끼워 넣는 것과 AI를 전제로 일의 순서를 다시 짜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보고서 하나를 쓰는 일도 쪼개 보면 문제를 정하고,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초안을 쓰고, 검토하고, 결정하는 여러 단계로 이뤄져 있다. 내 일을 ‘보고서 작성’이라는 덩어리가 아니라 이런 흐름으로 볼 수 있어야 어느 단계를 AI에 맡기고 어느 단계를 내가 쥘지 판단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6 워크 트렌드 인덱스」에서도 AI 활용 수준이 가장 높은 ‘프런티어 프로페셔널’의 53%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부분을 AI가, 어떤 부분을 사람이 할지 의도적으로 정한다고 답했다. 전체 AI 사용자(33%)보다 20% 더 높다. ‘AI와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답하는 출발점은 내 일을 워크플로로 다시 정의하는 데 있다.

‘켄타우로스’에서 ‘사이보그’로

흐름을 다시 짠 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일할까. 하버드경영대학원(HBS)에서 발표한 한 연구가 단서를 준다. 연구진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 244명에게 AI와 함께 같은 경영 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5,000건 가까운 상호작용을 분석했다. 그러자 AI와 일하는 방식이 세 갈래로 나뉘었다.

AI와 일하는 세 가지 방식 인포그래픽

첫 번째는 ‘사이보그(Cyborg)’형이다. 문제 해결의 모든 단계에 AI를 촘촘히 엮어 넣고 주고받기를 반복했다. 참가자의 60%가 여기에 속했고, 기존 업무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AI를 다루는 새로운 역량까지 얻었다.

두 번째는 ‘켄타우로스(Centaur)’형이다. 분석의 큰 줄기는 자신이 쥐고 정해둔 일부 단계에만 AI를 썼다. 14%로 가장 적었지만 결론의 정확도는 세 유형 중 가장 높았고, 업무 전문성도 키웠다.

세 번째는 일을 통째로 AI에 넘긴 ‘셀프 오토메이터(Self-automator)’형으로 27%였다. 이들 가운데 44%는 AI의 답을 전혀 고치지 않고 그대로 냈고, 나머지도 표면적으로만 손봤다. 그 결과 업무 전문성도 AI 역량도 새로 쌓지 못했다.

필자는 이 중 켄타우로스와 사이보그가 우리가 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조직에 있는 구성원 대부분은 자기 일하는 방식이 먼저 몸에 익은 뒤 AI를 받아들인 AI 활용형(AI-enabled) 인재다. 이들에게는 판단의 주도권을 쥔 채 AI를 골라 쓰는 켄타우로스 방식이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사이보그 방식이다.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AI와 함께 생각하고 고치는 AI 네이티브(AI-native)한 일하기가 새로운 역량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일을 다시 설계하지 않은 채 손에서 놓아버리는 셀프 오토메이터 방식이다.

AI와 일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역량

켄타우로스든 사이보그든, AI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역량은 일의 흐름에서 세 지점으로 구분된다.

AI 협업 단계별 요구되는 핵심 역량 인포그래픽

일의 제일 앞단에서는 문제를 정의하는 역량이 요구된다. AI는 주어진 질문에 빠르게 답하지만 어떤 질문을 던질지는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문제를 잘못 세우면 AI는 틀린 문제를 매우 빠르고 그럴듯하게 풀어낸다.

중간에서는 과정을 점검하고 피드백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사이보그형 참가자들의 특징도 AI와 주고받을 때마다 결과를 확인하고 방향을 고치는 반복에 있었다. 지금 잘 흘러가고 있는지, 어디서 엇나가기 시작했는지를 중간에 알아차리지 못하면 마지막 검토 단계에서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다.

일의 마지막 단계에서 필요한 건 결과를 검증하는 역량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AI의 그럴듯한 답에 기댄다. 와튼스쿨의 스티븐 쇼(Steven Shaw)와 기디언 네이브(Gideon Nave)가 2026년 공개한 연구의 첫 번째 실험에서, 참가자들의 정답률은 AI 없이 풀 때보다 AI가 맞는 답을 줄 때 25% 더 높았지만, AI가 틀린 답을 줄 때는 15% 하락했다. AI에 물어본 경우 틀린 답을 그대로 따른 비율은 약 80%였다. 때문에 실무 현장에서도 검증 역량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세 가지 역량은 결국 책임으로 이어진다. AI가 사번을 받고 일을 처리하더라도,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문제를 정하고 과정을 지켜보고 마지막에 확인한 사람이다.

J커브의 골짜기는 ‘삽질’이 아니라 ‘연습’이다

이런 역량이 하루아침에 쌓이는 건 아니다. 정재헌 SKT CEO는 서울대 특강에서 ‘AX의 J커브’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AI를 도입하면 곧바로 생산성이 오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먼저 떨어졌다가, 어느 시점을 지나 가파르게 오른다는 것이다.

AX의 J커브 그래프

변화관리에서는 이처럼 성과가 내려앉는 구간을 흔히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고, 학습곡선(learning curve)의 초입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새로운 방식이 자리 잡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구간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이 골짜기에서 벌어지는 시행착오, 흔히 ‘삽질’이라 부르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AI에게 어떤 단계를 맡기고 어떤 기준으로 확인할지, 어디서 개입해 방향을 고칠지를 몸으로 익히고 경험해야 AI를 통한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문제 정의, 중간 점검과 피드백, 결과 검증의 역량도 바로 이 골짜기에서 길러진다.

J커브를 건너는 일은 개인에게만 맡길 수 없다. 리더는 생산성이 잠시 떨어지는 구간을 조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기다려줘야 한다. 골짜기에서 당장의 성과를 다그치면 구성원은 가장 쉬운 길, 즉 일을 통째로 AI에 넘기는 셀프 오토메이터 방식을 선택하기 쉽다. 따라서 조직은 시행착오를 감당할 시간과 도구, 실패해도 괜찮은 실험의 장을 마련해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은 지금의 시행착오를 단순한 ‘삽질’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연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서울대에서 열린 정재헌 SKT CEO의 특강 모습

지난 9월 서울대에서 열린 정재헌 SKT CEO의 특강 모습

‘AI와 무엇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무엇’을 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 답은 내 일을 흐름으로 다시 보고,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을 고르고, 골짜기를 건너며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AI가 더 많은 일을 해낼수록 사람의 경쟁력은 일을 정하고, 지켜보고, 확인하고, 책임지는 데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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