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바람을 타고 많은 기업이 환경보호를 외칩니다. 하지만 몇몇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사슬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환경을 파괴하는 과정들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은 ESG 기업으로 이름을 알립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그린워싱*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소비자도 기업의 가치사슬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시대, 기업이 가져야 할 자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 그린워싱: Green과 White Washing의 합성어. 상품이나 용역의 환경적 속성 또는 효능에 관한 표시·광고가 허위 또는 과장되어 단지 친환경 이미지만으로 경제적 이익을 보는 경우를 말함(한국환경산업기술원).
ESG 뒤에 숨은 위장환경주의, 그린워싱
‘위장환경주의(The Green Lie)’라는 독일 다큐멘터리에는 팜오일 사례가 나옵니다. 제작진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잠비(Jambi) 지역의 농장을 찾아가는데, 이곳에서 기름야자 나무를 심기 위해 열대우림에 고의로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든 넓은 땅을 마주합니다. 잠비 지역의 환경 NGO 리더인 페리 이라완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나르 마스(Sinar Mas), 윌마(Wilmar) 등 몇몇 팜오일 기업들의 운영 행태를 조사해본 결과,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곳은 한 곳도 없어요. 일단 인권이 침해되고, 농민과 지역 사회에 대한 폭력과 강제 이주, 환경 파괴와 빈곤이 발생합니다.”
제작진이 방문한 농장의 경우 1천 헥타르 중 약 600헥타르의 숲이 고의 방화로 사라졌습니다. 이 농장 생산물은 모회사인 마킨그룹(Makin group)에 납품됩니다. 그러나 마킨그룹에서는 “경제, 사람, 환경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전 세계 팜오일 중 56.5%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됩니다. 그리고 1990년에서 2015년 사이 인도네시아 삼림은 50%나 파괴되었습니다. 팜오일은 벌목과 더불어 삼림 파괴의 대표적 원인입니다. 다큐멘터리 속 잠비 지역은 수많은 파괴 현장의 한 곳일 뿐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고의 방화 농장의 생산품은 최종적으로 유니레버까지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ESG 경영의 선두 기업인 유니레버 역시 그린워싱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SG 부상할수록 그린워싱도 활발
그린워싱은 근본적 개선 없이 이미지만 근사하게 친환경으로 포장하는 행위입니다.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그 시작을 1970년 초반으로 봤습니다. 환경파괴 우려가 확대되면서 일반 대중도 환경을 인식하기 시작하니, 기업·기관들이 자신들의 힘을 잃지 않기 위해 환경 이미지를 차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린워싱은 환경에 대한 자각이 높을 때일수록 더 활발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ESG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 역시 그런 위험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린워싱은 초기에 이미지 포장의 형태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BP의 경우 2000년에 브리티시 페트롤리움(British Petroleum)을 비욘드 페트롤리움(Beyond Petroleum)으로 바꾸고, 로고도 태양 이미지로 교체했습니다. 석유 기업 이미지에서 친환경 녹색 이미지로 전환하기 위해 2억 달러를 지출했을 때, 일부 시민단체는 이미지 대신 근본적 환경 개선에 나서라고 촉구하며 비판했습니다.
최근에는 온실가스 감축 비율, 재생 에너지 사용 비율 등 ‘이미지’ 대신 ‘데이터’로 친환경 기업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린워싱이 이미지와 현장 간의 간극으로 나타났지만, 최근에는 숫자와 현장 간의 간극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보 투명성 증대로 그린워싱의 이면 파헤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숫자 뒤에 숨는 것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보 개방이 확대되고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전 세계가 서로 빠르게 연결되고, 일반 소비자도 숫자와 현장 간 간극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산림감시(Global Forest Watch)는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 산림의 파괴·복원 현황을 오픈소스 웹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고해상 위성 정보 등을 통해 산림 변경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어, 이제 어느 지역에서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는지 쉽게 확인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린피스 또한 2019년 고의적 방화로 팜오일을 생산하는 곳 9,960개 지점을 손쉽게 찾아냈습니다. 이와 함께 방화 농장의 생산물이 몇 단계를 거쳐 유니레버, P&G, 네슬레 등에 공급된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네슬레는 MSCI에서 평가하는 ESG 등급이 AA이고, 유니레버와 P&G도 A등급입니다. 이런 ESG 우수 기업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소비자들은 오랑우탄 멸종과 초콜릿을 연결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이 오랑우탄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팜오일이 들어간 네슬레 킷캣 초콜릿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합니다.
최근 소비자들은 데이터 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캡슐 커피를 생산하는 네슬레는 알루미늄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자 회수율을 100%까지 올리겠다고 합니다. 이 경우 보크사이트(Bauxite)*에서 알루미늄을 생산할 때 필요한 에너지의 5%만 쓰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친환경적이지 않은 캡슐 커피 시장을 이끌며, 빈 알루미늄 캡슐 쓰레기만 매년 최소 8천 톤을 배출한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 보크사이트: 알루미늄 원재료
이제 AI, IoT(사물 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으로 비즈니스 가치사슬의 모세혈관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하고, 고객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빠르고 광범위하게 정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기업이 그린워싱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진정성 있게 환경 문제를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수 선언’ 아니라 ‘고백 선언’ 필요해
많은 기업이 ‘우리는 지속가능한 기업, ESG 우수 기업’이라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은 ‘우수 선언’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고백 선언’입니다.
아직 원재료 단계 전반적인 분야까지 지속가능성을 추적하고 모니터링하는 기업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사회는 가격은 계산할 줄 알아도 자연자본 소비까지 포함하여 실제 환경 비용 전체를 계산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살충제 10g의 가격은 계산해도 그로 인해 강물, 토양, 인체에 끼치는 영향까지 비용으로 계산하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 시스템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불안정하기에 그린워싱의 위험성은 항상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원재료 생산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폐기 단계까지 훑으면서 추적하고, 환경 영향을 분석하며,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SG 경영 우수 기업은 문제점이 없는 기업이 아니라, 문제점이 발견되었을 때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업입니다. 파타고니아가 살아 있는 거위·오리 또는 푸아그라 요리를 위해 강제로 먹이를 먹인 거위·오리의 털을 100% 배제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던 것도 동물보호단체의 항의에 즉시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가치사슬 전체에 문제점 없는 기업은 없습니다. 다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업과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기업이 있는 것이며, 이것이 그린워싱 여부를 나눌 것입니다.
신영복 교수는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며 “실천과 변화란 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ESG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ESG 정보 측정, 관리, 공개를 한다 해도 ESG의 완성은 발을 딛고 있는 곳, 즉 가치사슬의 각 현장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린워싱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머리에서 발까지의 여행에 진지하게 나서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