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비보이팀 ‘진조크루’는 세계 5대 비보이 대회(레드불BC원, 배틀오브더이어, 프리스타일세션, UK비보이챔피언십, R16코리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팀이다. 그리고 진조크루의 중심에는 안무감독이자 팀의 정체성 그 자체인 윙(김헌우)이 있다. 올해로 댄스 경력만 26년차, 대한민국 비보이 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비보이를 넘어 ‘선수’로 올림픽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윙 김헌우를 만나봤다.
‘레드불 비씨원’ 챔피언이 된 따라쟁이 소년 김헌우
김헌우는 어릴 때부터 형 김헌준(왼쪽 사진 가운데, 오른쪽 사진 뒤)이 하는 건 무엇이든 따라하길 좋아했다. (사진 제공 : 진조크루)
소년 시절의 김헌우는 미니카 장난감부터 공놀이까지, 무엇이든 형을 따라하길 좋아했던 ‘따라쟁이’였다. 여느 꼬마 형제들이 그렇듯 다투기도 자주 다퉜다. 두 살 터울의 형(스킴 김헌준, 진조크루 단장)이 브레이크 댄스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따라쟁이 동생을 귀찮아했던 형은 “이것만큼은 따라하지 마라” 엄포를 놓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김수용 작가의 만화 ‘힙합’이 대유행하던 1990년대 말, 형제는 그렇게 브레이킹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청소년들이 춤을 추기에 여건이 그리 조건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만화책을 교본 삼아 동작을 따라하고, 마땅한 공간이 없어 새벽 시간 지하철 역사에서 연습을 했다. 청소년 수련관은 동네에서 춤 좀 춘다는 또래들의 아지트였고, 형제는 청소년 수련관에 모여서 선배 춤꾼들을 어깨 너머로 구경했다. 자연스럽게 춤 추는 친구들과 함께 무리를 이루게 됐고, 좀 더 본격적으로 춤을 춰 보자는 생각에 2001년 “따라하지 말라”던 형, 함께 춤을 추던 친구들과 크루를 결성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레이킹 크루, 진조크루의 탄생이다.
2008년 김헌우는 세계적인 비보이 대회 레드불 비씨원에서 우승해 챔피언에 등극했다. (사진 제공 : 진조크루)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WDSF 인터내셔널 시리즈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헌우. (사진 제공 : 진조크루)
“고등학생 선배들이 모여서 춤을 춘다는 얘기를 듣고 몰려가서 구경을 하고, 잘 추는 형이나 누나들의 동작도 흉내내고 그랬었죠. 춤 추는 건 따라하지 말라던 형도 같이 구경 다니다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형이나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게 됐어요.”
진조크루를 결성한 뒤에는 더 본격적으로 춤에 전념했다. 댄스스포츠 연습실을 빌리며 길거리 연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공간이 갖춰진 덕에 밤새도록 춤을 출 수 있었다. 닉네임을 ‘윙(Wing)’으로 정한 것도 매일 새벽까지 연습하던 그 무렵이다. 그런 연습 덕에 2008년에는 최고 권위의 국제 브레이킹 대회인 ‘레드불 비씨원’에서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때부터 윙과 진조크루는 배틀 오브 더 이어, R16 코리아 등 주요 브레이킹 대회에서 이름 그대로 ‘불살라 오르며(오를 진, 불사를 조)’ 날기 시작했다.
‘선수’로서의 파리 올림픽 도전, “훗날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최근 김헌우는 진조크루 풀멤버와 함께 일본 니혼TV의 ‘더 댄스 데이’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제공 : 진조크루)
최근 김헌우는 진조크루 풀멤버와 함께 일본 니혼TV의 ‘더 댄스 데이’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제공 : 진조크루)
통산 100회 이상의 대회 우승 경력을 갖고 있는 윙 김헌우는 대한민국 비보이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비보이가 아닌 브레이킹 종목의 선수로는 신참이다. 지난해에는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물론 브레이킹이 정식 종목이 된 이번 파리 올림픽 출전도 노리고 있다. 이미 레전드인 그가 국제 스포츠 대회의 선수로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동안 많은 것을 이뤄왔지만, ‘무언가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 답한다.
“부담도 당연히 있지만, 훗날 돌아봤을 때 ‘왜 그때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힘 닿는 데까지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어요. 2차 OQS까지 잘 마치고 파리 올림픽 본선에 출전할 수 있다면 굉장한 영광일 것이고, 제 경력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2024년 상반기는 그에게 혹독한 시간이었다. 부상이 심해져 수술을 해야 했고, 부친상도 겪어야 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19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1차 예선대회(OQS, Olympic Qualifying Series)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얼마 전에는 일본으로 날아가 니혼TV의 ‘더 댄스 데이’에 진조크루 풀 멤버로 초청을 받아 출전, 세계적인 댄스팀들을 제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숨 가쁜 일정 끝에 이제는 6월 20일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2차 OQS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2차 OQS에서 파리 올림픽 출전 여부가 판가름이 납니다. 개인적으로 2차 대회에 승부수를 띄우려고 하고 있어요. 그날을 위해 연습과 재활을 병행하고 있어요. 컨디션은 순조롭게 회복 중입니다.”
“내 최고의 순간, 계속 갱신 중… 춤을 추기 시작한 덕분”
진조크루의 안무감독이자 대한민국 브레이킹 국가대표, 26년 차 비보이 등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김헌우는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국내와 해외를 번갈아 오가느라 많은 시간을 내지는 못하지만, “짧더라도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을 재밌게 느꼈으면 좋겠다”며 함께하는 짧은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함께하고 싶어 연습실로 데려오는 날도 많다. 그 덕분인지 다섯 살, 세 살, 한 살배기 삼둥이들은 벌써 아빠를 따라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춤을 추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죠. 그래서 함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을 재밌게 느꼈으면 좋겠고요.”
부상과 싸우고 파리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며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요즘 그가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감사함’이다. 형제가 함께 춤을 추며 땀 흘렸던 순간들, 수 많은 비보이들과 울고 웃으며 경쟁했던 순간, 어릴 적 즐겨 보던 만화의 작가가 진조크루의 이야기를 그려냈을 때,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그리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올림픽 출전에 도전하는 지금까지 이 모든 순간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 덕분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는 춤을 추기 시작한 것에, 지금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의 모든 인연들을 만나고, 아직도 형과 함께 하고 있고, 아내를 만나 가족을 만들고, 동료들과 함께 이렇게 큰 기업의 후원을 받고,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모든 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느껴요. 춤 추길 정말 잘했다고. 춤을 추기 시작한 덕분에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계속해서 갱신하고 있는 것 같아요.”
SK텔레콤은 지난 2022년부터 브레이킹 국가대표팀, 진조크루 팀을 후원해오고 있다. 또한 팀 후원과 별도로 윙 선수 개인에 대한 후원도 이어오고 있다. SK텔레콤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균형 발전, 스포츠 ESG 실천이라는 스포츠 육성 철학을 가지고 다양한 종목 및 선수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