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톡터뷰>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에 AI가 적용됐을 때 일상의 변화에 대해 대화하는 전문가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황재근 디자이너
우리 일상 곳곳에 들어온 AI는 인간의 감성과 창의력을 학습하며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람의 손길과 감각이 중요한 패션 디자인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AI 시대, 패션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지 황재근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레퍼런스 어시스턴트로 활용되는 AI…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
황재근 디자이너
Q. 디자인 분야에서는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레퍼런스 어시스턴트로서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본격적인 작업 전 ‘프리 디자인’ 과정에 AI가 큰 도움이 됩니다. 프린트 이미지 및 패턴의 크기와 배치를 조정한다거나, 마음에 드는 실루엣을 찾기 위해 디자인의 앞뒤 혹은 대칭을 바꿔보는 ‘베리에이션’을 하기 아주 편리하거든요. 또 패션 광고나 마케팅 분야에서도 활발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에 브랜드의 콘셉트를 녹인 AI 영상 시뮬레이션을 보여준다거나, AI 모델을 사용해 홍보하는 식이지요.
Q. AI가 만들고, AI 모델이 런웨이에 선 패션쇼도 열렸다던데요.
네. 바로 작년 뉴욕에서 열린 AI 패션 위크예요. 저도 처음에는 AI가 만들었는지 모른 채로 봤습니다. 뉴욕은 패션 위크 중에서도 가장 실용적인, 웨어러블함을 강조하는 게 특징인데 유독 작년에는 오트 쿠튀르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 :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고급 양복’이라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들어지는 맞춤형 하이엔드 패션 디자인을 뜻한다. 현대 명품 브랜드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브랜드의 아이코닉함과 시그너처, 예술성을 가감 없이 선보이는 데 중점을 둔다. 컬렉션처럼 실험적인 디자인들이 많더라고요. 나중에야 AI로 진행한 패션쇼임을 알게 됐습니다. 자세히 보니 리얼하면서도 애니메이션 같은, AI 이미지 특유의 느낌이 났어요. 소재와 관련해서도 질감을 섬세하게 구현하는 동시에 구김 없이 매끈하게 표현했죠.
■ 뉴욕에서 펼쳐진 ‘AI 패션 위크’
AI 패션 위크에서 우승한 컬렉션들 @AI 패션 위크 홈페이지
2023년 4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메종 메타(Masion META)가 뉴욕에서 개최한 ‘AI 패션 위크’는 AI가 옷을 디자인하고, AI 모델이 런웨이를 걷는 패션쇼였다. 지원자들은 이미지 생성 AI 도구를 이용해 의상 컬렉션 이미지를 만들어 제출했으며, 주최 측은 이를 온라인에 전시하는 동시에 투표를 통해 상위 10명의 결선 진출 디자이너를 선정했다. 메종 메타의 창립자 시릴 푸아레(Cyril Foiret)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미학과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패션계에 진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Q. 생성형 AI를 이용해 직접 작업을 해본 적이 있나요?
무료로 쉽게 접근 가능한 생성형 AI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저도 작년 말부터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등 생성형 AI 프로그램들을 몇 번 사용해 봤습니다. 생각하고 있는 콘셉트를 텍스트로 입력하거나, 베이스 이미지를 넣으면 알아서 결과물을 만들어주더라고요. 새로운 디자인 시뮬레이션에 의구심이 들거나 문득 결과가 궁금해질 때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기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무대 의상처럼 콘셉추얼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때 잘 사용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가 주제라면 AI에게 스토리 라인을 들려주는 거예요. 인간이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처럼 AI는 일명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스타일보다는 화려하고 극적인 맥시멀한 디자인을 할 때 그 효과가 두드러진다고 봐요.
“AI,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돕는 훌륭한 보조 역할 할 수 있어”
MBC <복면가왕>에서 1,000개가 넘는 독특한 가면을 직접 만든 황재근 디자이너
Q. 다른 동료 디자이너들도 AI를 많이 사용하나요?
국내에서는 아직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디자이너 개인적으로 한 번씩 시도해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디자인 회사에서도 상용화되지 않았고요. 디자이너는 고유의 영감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데 큰 자부심을 느끼는데, 이 과정에 AI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조금 꺼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Q. 앞으로 패션 디자인 업계에서 AI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까요?
AI는 디자인의 근원적인 출발을 만들지 못해요. 아무리 학습하더라도 브랜드의 시그너처나 브랜드 감성의 본연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패션 디자인은 작업하면서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 많아요. 예를 들어 원단을 이리저리 꼬고, 돌리고, 접으면서 원하는 느낌을 찾아가는 거죠. 장인 정신이 깃든 손길이나 마스터가 재단하는 순간의 판단력처럼 AI가 학습해도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감성과 순간적인 인간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AI를 어시스턴트로 활용하면 어떨까요? 패션 디자인을 막 시작한 1인 브랜드가 브랜드 고유의 감성을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예상합니다. 브랜드 네이밍부터 디자인 레퍼런스, 전개, 베리에이션, 실루엣 구현 등 반복적인 과정에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디자이너가 언어로 설명해야 할 부분에서도 훌륭한 보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